올해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된, 김혜영의 에세이 화집[조용함을 듣는 일]은 작가가 지난 5년간 그린 그림들 가운데 57편과 에세이 10편을 수록했다.
1부는 작가 노트, 2부는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작가가 자신과 같은 '혜영'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달마다 만나 인터뷰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실험적 작업을 담았다.
제목 '조용함을 듣는 일'은 내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무슨 의미지?
현실의 소란스러움을 떠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고독한,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고요한 고독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을 두고 '조용함을 듣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물결이 내는 소리는 조용하다. 주의를 기울여 조용함을 듣는 것은 다정한 관심의 방향이다."
작가의 그림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가 사용하는 초록색 배경 색상은 마음에 든다.
물론 화집의 색과 실제 그림의 색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담긴 그림들을 살펴보면 소재로 바다, 집, 의자, 화초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 소재들은 다양하게 배치되어 나타난다.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담았다.
비현실적인 느낌의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써늘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타인과 떨어져서 자신만의 고독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이렇게 써늘한 느낌인 걸까?
나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담겨 있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일 거다.
소파에서 편안히 잠을 자는 고양이, 가벼운 파도가 치는 바다, 목베고니아.
고양이도 바다도 목베고니아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 모든 것이 담긴 그림이니 당연히 마음에 들 수밖에.
실내에 바다가 있고 고양이가 있고 목베고니아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서투른 내가 고군분튜하는 동안 멋대로 자라난 화분들은 모두 자연에서 온 것이고 그만의 규칙이 있어 지켜보는 즐거움이 컸다. 복숭아도 먹고 옥수수도 먹을 수 있어 좋지만 이번 여름은 특히나 식물 돌보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 큰 기쁨이다. 화분들이 있는 작업실 중앙에는 에어컨이 없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초록색 이파리들을 만지고 물을 주고 바람 쐬어주는 동안은 아무래도 괜찮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땀이 나도 즐거운 일인가 보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프랑스 브르타뉴의 빈 집 생각이 났다.
평소 산책하는 길에 지나가는 집인데, 그 집에는 한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그 할머니는 가끔 집에서 나와서 앉아계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느날 그 집은 비고 집 마당에는 풀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간 걸까? 아니면 돌아가신 걸까?
잊고 있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림이었다.
나는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저자가 말하는 '그 뒤의 공간'을 바라보게 되었나 보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내 기억 속의 공간.
이 화집을 덮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저자의 소망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왜 이상한 마음일까?
아무튼 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 이상한 마음이 언젠가 생겨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