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소묘 22

[여전히 나는]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위한 책

오후의 소묘에서 올 9월에 펴낸 이 그림책은 [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가 쓰고 모니카 바렌고가 그렸다. 그림이 익숙하다 했더니 오후의 소묘에서 앞서 번역출간한 [구름의 나날] [사랑의 모양] [마녀의 매듭]을 그린 작가도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마녀의 매듭]을 좋아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경험을 한다. 그 상실감은 너무 커서 한동안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그림책 속 화자는 나이든 남성으로 앞서간 자신의 배우자를 그리워하며 추억한다. 아이스크림, 에스프레소 커피, 바다와 들판, 그리고 카페가 등장하는 그림이 이탈리아를 느끼게 해준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갈색톤이다. 가을 낙엽을 떠올리게 하는 색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앞서 떠나간 사람들, 동물들을 잠시 떠올렸다. 시간이 흐..

늙음과 죽음 2024.09.08

[매일을 쌓는 마음]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정성껏 글로 묶은 책

[매일을 쌓는 마음]은 작가가 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꼼꼼하게 썼다. 그 정성이 대단해서 이 얇은 책을 후루루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천천히 자기 전 보름 동안 읽었다. 그렇지 않으면 글에 담긴 정성에 체하게 될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일기를 적어왔고 성인이 되어서는 문장으로 일기를 쓰지 않고 메모로 일기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껏 매일을 체크하는 일상을 계속하고 있는 나는 이 작가가 일기를 적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일상을 되돌아보기 위해 적는 나와 달리 작가에게 있어서 일기는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임과 동시에 글 작업이다. 일기는 매일의 글쓰기이고 결국 그 글쓰기가 이 책을 낳았..

[자기만의 방으로] 10인의 여성이 들려주는 다채로운 '자기만의 방' 이야기

[자기만의 방으로]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만들거나 하는 여성 10인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자기만의 방'이란 자기만의 방일 수도 있지만 책상일 수도 있고 집일수도 있고 집과 별개인 작업실일 수도 있고 일터인 책방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방은 닫힌 공간이기도 하지만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타인과 관계맺는 곳이기도 하다.  안희연의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나의 우주, 나의 책상 위는 언제나 더럽다. 책상을 괜히 우주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본질이 카오스라면 나의 책상 위는 노트북과 마우스가 놓인 딱 어깨너비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책에..

기타 2024.05.14

[차를 담는 시간] 도예가 노트

[오후의 소묘]에서 나오는 작가노트 시리즈는 무척 흥미로운 시도로 보인다. [고유한 순간]은 티블렌더의 작가노트였는데, 이번 [차를 담는 시간]은 도예가 노트다. 앞으로도 플로리스트, 서점원의 노트를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차를 담는 시간]은 한동안 내 베개맡 책이었다. 자기 전 소제목 아래 짧은 글 몇 편을 읽고 잠들곤 했다. 그 만큼 글이 편안했다고 할까. 부제로 '토림도예 도예가'라고 해서 '토림도예'가 뭐지? 했다. 도자기 브랜드라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난 후 알게 되었다. '토림'은 이 글을 쓴 김유미 도예가의 남편 도예가의 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유미 작가의 소개를 보면 '날마다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도자기를 빚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글을 읽어봐도 그녀의 일상은 그랬다. 평화로와 보..

[세상 모든 밤에] 고양이와 함께 한 꿈 속 모험

[세상 모든 밤에]는 파니 뒤카세의 매력적인 그림이 담긴 그림책이다. 글은 세실 엘마 로제가 썼다. 오후의 소묘에서는 파니 뒤카셰의 그림책을 벌써 3번째 출판한 것이다. [곰들의 정원(2022)] [레몬타르트와 홍차와 별들(2022)] 그리고 [세상 모든 밤에(2023)] 파니 뒤카세의 그림은 환상과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보고 있으면 섬세하고 매혹적이며 예쁘다. 파니 뒤카세의 그림책은 이야기 자체보다 그림을 즐기면서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이번에는 고양이와 함께 밤나들이를 하는 이야기다. 도시의 지붕 위, 거리를 걷고 애드벌룬을 타고 줄을 타고 신기한 동물들을 만나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풀어주는 기막힌 밤의 모험이 펼쳐진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밤시간이 될까? 그런데 왜 출판사..

상상력 2023.06.11

[우울이라 쓰지 않고] 20대 우울의 감성을 담은 글

[오후의 소묘]에서 2022년 가을에 출간한 이 에세이집은 20대 우울의 감성을 담았다. 책 커버의 푸른 빛이 글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는 더는 계속 읽고 싶지 않아서 던져두었다. 가을과 겨울에 읽기에는 너무 우울하다. 꽃들이 만개한 봄날이 되니 다시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생겼고 난 밤마다 잠자기 전에 이 책의 작은 파트를 하나씩 읽었다. 작가의 우울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 또 글쓰기에 정성을 다한 작가의 노력이 느껴져서 글들을 서둘러 읽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아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30대일 것 같다. 우울한 20대를 넘어 30대에 들어서서 기쁨은 만났는지, 희망은 찾았는지 궁금하다. 작가 소개를 보니까, '궁금한 게 많고..

기타 2023.04.23

[조용함을 듣는 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올해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된, 김혜영의 에세이 화집[조용함을 듣는 일]은 작가가 지난 5년간 그린 그림들 가운데 57편과 에세이 10편을 수록했다. 1부는 작가 노트, 2부는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작가가 자신과 같은 '혜영'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달마다 만나 인터뷰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실험적 작업을 담았다. 제목 '조용함을 듣는 일'은 내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무슨 의미지? 현실의 소란스러움을 떠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고독한,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고요한 고독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을 두고 '조용함을 듣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물결이 내는 소리는 조용하다. 주의를 기울여 조용함을 듣는 것은 다정한 관심의 방향이다." 작가의 그..

예술 2023.04.06

[하얀 방] 다채로운 색상의 현실과 새하얀 세상에 관한 상상의 이중주

이번 12월에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한 그림책은 [하얀 방]. 파울 더모르(Paul de Moor, 1957-)가 글을 쓰고 카터 페르메이러(Kaatje Vermeire, 1981-)가 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 모두 벨기에 사람으로 이 책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021년에 출간되었다. 파울 더모르는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픽션, 논픽션 책을 쓰는 작가다. 또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책은 그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소녀의 독백으로 보이고 소녀의 '하안색'과 관련한 상상으로 보인다. 하얀색에 집착하고 있는 듯한 소녀의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카터 페르메이러의 그림은 사실적이고 소녀의 현실 속에서의 움직임을 담았다. 고양이와 함께 하면..

그림책 2022.12.22

[마녀의 매듭] 관계맺기에 관한 사색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펴내는 [오후의 소묘]에서 지난 11월말에 리사 비기(Lisa Biggi, 1975-)가 쓰고 모니카 바렌고(Monica Barengo)가 그린 [마녀의 매듭]을 번역출간했다. 이 이탈리아 그림책을 대하는 순간, 첫눈에도 내츄럴한 색감이 마음에 와닿는다. 리사 비기는 철학을 공부하고 글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여러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모니카 바렌고는 2021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그림은 무척 따뜻하고 자연적 색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가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숲 가장자리에 홀로 사는 심술장이 마녀가 어떻게 숲의 동물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게 되는지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누구나 자신을 해고지하는 존재를 좋아할 ..

그림책 2022.12.06

[레몬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따라 상상의 나래를!

오후의 소묘에서 8월말 파니 뒤카세의 또 다른 그림책을 출간했다. 지난 번에 같은 작가의 [곰들의 정원]을 출간했었다. [레몬타르트와 홍차와 별들]은 프랑스에서 2015년에 출간되었다. 파니 뒤카세의 섬세하면서도 재미난 그림은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레몬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제목이 일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제목이 이해가 된다. 이야기는 마치 꿈 이야기같다.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이다. 주인공 무스텔라가 욕조에서 책을 읽으면서 꿈나라로 빠진 걸까?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책 읽는 언니 곁에서 꿈나라로 빠졌던 것처럼. 무스텔라의 강아지의 이름이 몽테뉴인 것이 재미나다. 철학자의 이름을 강아지 이름으로 이용한 것이다. 강아지 곁에 서 있는 화분의 식물의 꽃이 안수리움을 닮았는데, 어..

상상력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