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소묘 22

[버섯소녀] 장마철에 읽기 좋은 그림책(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오후의 소묘]는 얼마 전 [버섯소녀]라는 독특한 그림책을 선보였다. 6월 25일부터 7월 25일까지가 대체로 장마의 시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6월 21에 이 그림책을 꺼내놓은 것은 영리한 생각으로 보인다. 이 그림책은 장마철 풍경에 대한 감성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장마철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잠깐 햇살이 비칠 때 나가 하얀 버섯을 만났는데, 얼마 후 그 버섯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이 그림책을 작업했다고 하지요. 우리동네 공원에서 장마철에 흔히 보이는 하얀 버섯이 떠올랐다. 잠깐 동안 있다가 사라지는 버섯. 버섯의 삶은 정말 짧다. 사라진 버섯을 보고 우리 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사라진 것이 어딘가에 있어 주었으면..

그림책 2022.07.05

[사랑의 모양] 떠나간 사랑도 사랑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모니카 바렌고가 그림을 그린 [사랑의 모양].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펴내는 오후의 소묘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내츄럴한 컬러의 색상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랑의 모양'이라는 제목에 좀 갸우뚱했다. 원제를 살펴보니까, '사랑 이야기 하나'다. 그런데 왜 출판사에서는 사랑의 모양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걸까? '어떤 사랑이야기'로 제목을 달기에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어떤 여자에게 어느날 꽃 한송이가 찾아오고 여자는 그 꽃을 정성껏 돌보면서 기쁨을 맛본다. 어느날 그 꽃이 사라져버리고 사라진 꽃을 그리워하며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는 여자. 하지만 그 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이 지난 봄이 왔을 때는 이웃 정원에 꽃이..

그림책 2022.05.28

[구름의 나날] 힘든 삶에게 위로를 전하는 그림책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는 출판사 [오후의 소묘]에서 이번에 펴낸 그림책은 알리스 브리에르아케가 글을 쓰고 모니카 바렌고가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책 [구름의 나날]이다. 우리 삶이 구름 속에, 비 속에 머물러 있는 듯 어렵고 힘들어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운이 빠지는 나날들이 있지만 그 날들도 비가 개이듯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림의 색상이 마치 오래된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 듯 따뜻하다. 그림의 소재도 고양이, 바이올린 등이 등장하는데, 마치 그림 속에서 음악이 흐르는 듯하다. 고양이는 곁에서 부드럽게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누구나 살다보면 힘들 때가 있으니 이 그림책의 메시지는 특별할 것은 없다고 해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그 위로에는 그림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림책 2022.04.27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가정폭력의 희생양을 다룬 그림책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가 글을 쓰고 비올레타 로피스가 그림을 그린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을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서 작년 마지막 날에 출간했다. 긴 제목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쥐. 성실하게 살아온 쥐의 비극적인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잘난 체 하는 쥐' 의 스페인 민담을 '성실한 쥐' 이야기로 다시 쓴 것이다. 19세기 여성들에게 겸손함을 강조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가르쳐왔다는 '잘난 체 하는 쥐'의 구전민담이 두 여성 작가에 의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정폭력 속에서 희생양이 되는 여성이야기를 비유적으로 고양이와 결혼한 쥐 이야기로 풀어 본 것이다. [오후의 소묘]에서 앞서 펴낸 비올레타 로페스의 그림책들 [섬 위의 주먹] [팡도르의 할머니] [마음의 지도]..

소수자감성 2022.01.23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두 여자], 엄마와 딸의 관계

[오후의 소묘]에서 펴낸 이번 그림책은 한 마디로 독특하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 때문인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책을 처음 접한 것은 [반이나 차 있을까? 반 밖에 없을까?(논장, 2008)]를 통해서였다. 관점의 상대적 차이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 글도 그림도 모두 이 폴란드의 대단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것이었다. 이 그림책은 폴란드 시인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의 짧은 시를 담고 있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이야기. 자신의 심장을 나눈 딸을 지킬 거라고 말하는 엄마. 세상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 역시 적당한 거리두기가 있어야 하리라. 그런데 그 적당함은 어느 정도일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개성 있고 멋지지만, 약간 무서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계속 보게 ..

그림책 2022.01.13

호찌냥찌 새로운 이야기1, 2권, 호랑이와 일곱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

출판사 [오후의 소묘]에서 이번에 펴낸 만화책 [호찌냥찌 새로운 이야기] 1,2권은 따뜻한 동화같은 이야기들을 고양이들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호랑이 아저씨와 일곱고양이가 함께 살아간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호랑이도 고양이과이니 함께 못 살까? 하는 만화적 상상. 호랑이 한 마리와 일곱고양이들의 공동체는 약간의 투탁거림이 있을 뿐 지극히 평화롭다. 1권에는 봄, 여름 이야기, 2권에는 겨울, 다시 봄 이야기로 챕터가 나뉘어져 있다. 1권의 시작부분에서는 이야기가 좀 따분하다 싶었다. 하지만 1권 끝나는 부분에서 호랑이 삼촌이 아기 호랑이가 되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좀 흥미로와졌다. 그리고 2권의 깡통로봇이 키운 고양이 깜부이야기도 독특하다. 나름의 상상력이 더해지니 이야기가 좀더 ..

만화 2021.12.31

[고유한 순간들] 티블렌더가 풀어놓은 이야기

사루비아 다방의 티블렌더 김인의 이야기를 담은 [고유한 순간들(오후의 소묘, 2021)]. 티블렌더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티블렌더가 차를 섞기 위해 고심하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출판사 오후의 소묘는 플로리스트, 도예가, 서점원의 이야기도 책으로 엮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직업을 자의식을 가지고 예술적 차원까지 승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가 궁금하긴 하다. 그런 점에서 오후의 소묘의 기획이 참신하다. 다만,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티블렌더의 글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꾸며 쓴 기색이 느껴지는 글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티블레더가 새로이 블렌딩한 차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

[새의 심장] 삶, 사랑, 시를 담은 이야기

이번에 오후의 소묘에서 펴낸 그림책은 [새의 심장(2021)]. 마르 베네가스가 쓰고 하셀 카이아노가 그렸다. 채도가 낮은 붉은 색과 푸른 색, 그리고 회색이 넘실거리는 그림들이 첫 눈에 호감을 준다.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줄거리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소녀와 어떤 소년, 나나와 마르탱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나나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고, 시와 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꿈을 꾸고 시를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충분하다. "폭풍이 고함치는 소리나 떨어진 낙엽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시라고 부른대." 누구나 시를 쓰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시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안겨준다. 날개를 가진 존재인 새는 우리의 심장이고 마음이라는 것. 시인의 마음이..

그림책 2021.09.06

[빛이 사라지기 전에] 바닷물 위 빛의 향유

올 여름 [오후의 소묘]가 펴낸 책은 빛과 물이 넘치는 작품이다. 말은 거의 없다. 우리는 그냥 작가가 그린 빛과 물을 눈으로 따라가며 느끼면 충분하다. 처음에 이 그림책을 펼쳐보았을 때는 난 글이 없는 그림책인 줄 알았다. 두 번째 펼쳤을 때 비로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적 향유, 그것을 의도했다면 성공한 셈이다. 책을 드는 순간, 표지의 홀로그램이 만드는 빛이 일렁인다. 아이디어가 좋다. 작가는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빛과 물에 시각적으로 빠져드는 관찰자. 우리도 작가가 전해주는 시각적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올 여름 바다에도 가지 못하는 내게 이 그림책은 큰 선물이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빛나는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책은..

그림책 2021.07.27

[허락없는 외출] 녹색 가득한 그림책

봉투를 뜯어서 책을 꺼내는 순간 녹색으로 눈부시다. '허락없는 외출'이라... 그림책을 펼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는데 글이 없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비로소 글이 나온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그냥 느끼라 하는 것 같다. 한밤중에서 새벽까지의 외출. 짙은 녹색에서 옅은 녹색으로 그리고 마침내 노란빛으로 끝이 난다. 하얀 옷을 입은 아이는 밤새도록 숲을 거닌다. 아름다운 꿈 같다. 지난 밤 나는 바위산을 헤매는 꿈을 꿨다. 가파란 바위에서 바위로 이동하는 일이 쉽지 않아 불안하고 두려운 꿈. 그런데 그림책 속 아이는 녹음이 울창한 숲을 헤맨다. 이 아이도 불안했던 것 같다. 한밤중 숲의 생명체들 속에서 다니는 일이 자유롭고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헤매다가 아침햇살이 비치니까 숲의 방황..

그림책 202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