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가 글을 쓰고 비올레타 로피스가 그림을 그린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을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서 작년 마지막 날에 출간했다. 긴 제목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쥐. 성실하게 살아온 쥐의 비극적인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잘난 체 하는 쥐' 의 스페인 민담을 '성실한 쥐' 이야기로 다시 쓴 것이다. 19세기 여성들에게 겸손함을 강조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가르쳐왔다는 '잘난 체 하는 쥐'의 구전민담이 두 여성 작가에 의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정폭력 속에서 희생양이 되는 여성이야기를 비유적으로 고양이와 결혼한 쥐 이야기로 풀어 본 것이다.
[오후의 소묘]에서 앞서 펴낸 비올레타 로페스의 그림책들 [섬 위의 주먹] [팡도르의 할머니] [마음의 지도] [노래하는 꼬리]를 떠올려 본다면 그녀의 그림세계는 참으로 다채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그림도 또 다르다.
무엇보다 이번 그림은 글과 바로 일치하여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도대체 그림과 글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었다.
그림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 다시 그림만 살펴보았더니 그림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글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글의 내용을 그림작가가 독창적으로 해석해서 주제는 같지만 그림만의 줄거리를 만든 것이다. 정말 대단한 그림책이다.
가정폭력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여성을 그린 작가의 그림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히려 글과 그림을 따로따로 보고 나면 더 이해가 쉽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해낸 독립적인 작업이 만나 주제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뉴욕 타임즈] 2021년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될 만하다.
[오후의 소묘]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출간하는 데 관심이 많은 출판사다.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해준다.
나만 해도 그림책 읽기를 즐기는 어른이다.
이번 그림책도 어른들이 보면서 사색할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