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Livcha 2021. 8. 3. 09:13

이 시집은 2004년에 나온 시집.

시인은 1961년생. 

 

1. 이 시집을 읽는데, 바로 든 생각은 '시인 맞구나'하는 생각이었다.

한글을 물흐르듯 잘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 시인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것들을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좋아보였다.

굳이 특별한 장소를 찾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사소해 보이는 소재들(나무, 곤충, 동물, 도끼같은 물건, 식당, 목욕탕과 같은 익숙한 공간 등)을 통해서도 시적 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시인이 진짜 시인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3.시인이 소재로 삼은 것들 가운데 특히 나무와 곤충, 새, 가축 등의 동물을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고

이 소재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가 다룬 소재들을 살펴보면,

식물로는

이끼, 살구꽃, 호박, 토란잎, 때죽나무꽃, 사과나무, 소나무, 버드나무, 석류꽃, 앵두, 쑥부쟁이, 토끼풀, 산벚나무, 조팝꽃, 갈매나무, 감나무,

동물로는

염소, 여치, 소쩍새, 곰장어, 배추흰나비, 뱀, 숭어떼, 산개구리, 쥐, 장끼, 나방, 왜가리, 꼬막.

그냥 곤충, 동물, 나무, 꽃, 풀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식물이나 동물을 거론하면서 시를 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4. 읽다가 보니, 좆, 거시기, 사타구니 남성성기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시를 쓰는 사람이 남성 시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 듯.

자기는 춘향터널 입구에 당도하기만 하면 거시기가 왈칵 묵직해지더라고 (춘향터널)

형편없이 자줏빛으로 쪼그라든 그것이 떠올랐던 것일까(가련한 그것)

다가와서는 가운데 중요한 곳을 톡톡, (중요한 곳)

좆도 불알도 두 쪽밖에 없는 놈이 어쩌자고(대접)

그러고 보니 남성성기를 언급하는 시인은 어쩌면 남성의 이성애적 성욕을 시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는데, 여성시인도 여성성기를 거론하면서 성욕을 드러내는 시를 쓰는지 모르겠다.

5. 성기뿐만 아니라 똥꼬, 항문도 이야기하는 것이 전체적인 시 분위기를 걸쭉하게 만들려 했던 걸까?

시집을 덮고 남는 '지배적인' 인상은 이렇다.

시골에 사는 평범한 남자의 사랑, 성욕에 대한 시?

어차피 시란 것이 시인의 정신적 수준과 감성 수준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 시집을 통해 본 시인은 한국의 지극히 평균적인 남성으로 평균적인 생각을 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시어를 다루고 한글을 다루는 실력에 비해 시인의 정신세계가 평이해서 아쉽다.

물론 솔직한 시인의 모습이 가식적인 시인의 모습보다는 백 배 낫긴 하지만.

6.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끌어내 마음에 담은 시는 없다.

잘 쓴 시라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시가 없다.  

7. 시집 제목을 따온 시, '강'을 적어본다.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