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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인문학자 도정일과 생물학자 최재천의 수다

Livcha 2021. 11. 16. 15:56

[대담(휴머니스트, 2005)]를 선물받고 책꽂이에 꽂아 두다가 책정이를 하는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긴 세월을 보낸 책은 책표지가 좀 바래졌다.

도정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생물학자 최재천은 익히 알고 있는 학자여서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가 궁금했다.  

최재천(왼쪽)과 도정일(오른쪽)

읽다 보니 생각보다 두 사람의 수다가 흥미로왔다. 생물학자로서의 최재천의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도정일이야말로 이야기꾼이구나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두 사람의 수다를 따라갈 수 있어 누구나 읽기 쉬운 책이다. 

 

수다 중 관심있는 대목을 여기 옮겨둔다.

 

"생물학자들은 우울증이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우울증은 공포에 적응하려는 본성이고, 나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최재천)

 

"누가 죽어주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거죠. 죽음이 삶을 허락하는 겁니다. 그러니 모두가 죽지 않게 되는 날이 모두가 죽기 시작하는 날이 되는 겁니다."(최재천)

 

"문학이 혼이니 망령이니 하는 것들을 등장시키는 것은 인간의 자기성찰, 반성, 객관화의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죽은 몸에서 빠져나온 혼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한때는 자신의 것이었던 죽음 몸뚱이를 내려다 본다. 문학에서는 이런 장면이 가능한데, 이건 성찰과 객관화의 아주 효과적인 장치죠. 유령이나 귀신, 원혼 등은 영혼과는 좀 다른 개념이지만 억울한 죽음, 이루지 못한 소망, 세상의 악행 같은 이야기들을 푸는 데는 아주 제격이에요.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은 유령과 망령, 원혼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도정일)

 

"죽음이라는 현실원칙 앞에서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고안해낸 인종의 자기기만이 영혼이라는 얘기가 되죠. 이 위대한 기만이 우리를 다독거리고 위로합니다."(도정일)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시간성으로부터의 자유가 영원성입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가 '시간성으로부터의 자유'예요. 인간은 시간의 노예죠. 아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반역을 시도할 수 없어요. 그러나 그 노예상태를 거부하고 시간의 재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영혼입니다. 우리가 영혼이라는 것에 갖다붙이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자유라는 거죠. 이 자유 속에는 시간성으로부터의 자유를 비롯해서 온갖 자유가 다 포함됩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 인간에게는 자유 추구의 성향이 DNA 속에 들어 있고, 이것이 영혼이란 것의 생물학적 토대라는 게 됩니다."(도정일)

 

"인간의 정신진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분명한 의식 체계르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틀린 그림'을 그려놓고는 그 그림을 정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도록 자기를 속이는 능력이라는 주장이었죠?"(도정일)

 

"수컷은 암컷이 번식하는 데 잉여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사회생물학, 즉 진화생물학이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최재천)

 

  "동물의 경우는 대부분 암컷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수컷이 되고 식물의 경우에는 수컷으로 시작했다가 암컷이 됩니다."(최재천)

 

"한가지 분명한 게 있습니다. 동물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성애의 예를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몇 년 전에는 동물의 동성애 예만 모아놓은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 나오기도 했죠. 인간을 포함한 모두 동물에서 동성애라고 정의할 수 있는 행동들이 비일비재하게 관찰됩니다."(최재천)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려거든 그들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보라고 말이지요."(도정일)

"'지금'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여기'를 넘어 다른 곳, 다르느 세계, 다른 가능성, '저기'를 보는 거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른 것들과의 '연결'을 시도합니다. (...)이런 연결의 능력은 아주 위대합니다. 어떤 글에서 나는 연결의 능력이 곧 상상력이라고 썼습니다."(도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