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작가의 글을 무척 기다려왔다.
그래서 [고귀한 일상]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지난 번보다는 책표지도 산뜻하고 책의 두께도 얇아서 독자들이 쉬이 손을 내밀 것 같다.
1. 그런데 '고귀한 일상'이라는 제목이 좀 튄다 싶었다.
'고귀한 일상'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상이 고귀할까?
그 답은 바로 프롤로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맹물맛' 같은 평범한 세계에서 신성성과 위대함을 구한다. 고귀한 일상을 살고 싶다. 삶의 근원이 되어 주는 것에 정성을 기울이고 '사소한 고귀함'으로 회생하자고 모은 손을 내밀고 싶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으로는 만족하기 힘든가 보다. '신성함', '위대함', '근원'이라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관념을 일상과 잇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이 고귀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작가의 마음, 그 마음을 책 제목으로 삼았구나, 싶었다.
나는 작가의 그 마음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자의 일상은 각자의 욕망대로 꾸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일상이 고귀해지길 바라기 때문인지 작가의 사소하고 평범한, 그 구체적 일상에 대한 인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잠자고 일어나는... 그야말로 반복적이고 지루해보일 수 있는 그 일상을 작가가 어떻게 꾸리는지 글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고귀한 일상을 살아내는(또는 향해가는) 구체적 여정의 체험자로서보다는 고귀한 일상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일상의 관찰자같다. 어쩌면 이 책의 글들은 '고귀한 일상'을 열망하는 작가의 채에 걸러진 생각과 시선을 담은 건지 모르겠다.
2. 김혜련 작가의 글은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이란 실을 짜고 엮어 얻은 빛깔 좋은 천 같은 글이라서 좋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게 건네는 안부인사, 누워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선 등 여전히 작가의 마음과 시선은 감동을 준다.
3. 내가 이 책에서 좋았던 글은 '늙은 고양이 오중이'.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거구나.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거구나.
미련한 가슴이 비로소 열리는데."('늙은 고양이 오중이' 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살아가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상은 바로 죽기 전까지 '꾸준히' 살아가는 일이다.
'스토리를 살다'에서 작가가 얻은 답 '그냥 살뿐'과 통하는 지점이다.
살아가는 일에 대단한 의미부여도 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생명체들의 삶 자체는 경이롭다.
4. '그냥 살뿐'이라는 답을 얻었지만 작가는 여전히 그냥 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작가의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사소한 일상을 사는 일과 고귀한 일상을 향해 욕구하는 일, 구체와 추상, 체험자와 관찰자,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과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깨달음 등.
나는 작가가 자신이 편안한 옷을 입듯 일상을 살아갔으면 싶다. 어느 누구도 사실 일상이 어떠해야 할지 알지 못하니까.
무엇보다 일상에 신성함, 위대한, 고귀함을 부여하려는 욕구가 있는 한 그냥 살기는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