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잠시 멈춘 사이, 도서관을 들렀다. 오늘은 도서관 교환도서 코너에서 교환해 가져온 그림책은 [뜨개질하는 소년].
책을 뒤적이다가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는 제목이 눈에 꽂혔다.
오래 전 내 포스팅을 읽으러 드나들었던, 뜨개질한다던 젊은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난 참 특별한 사람이구나, 했다.
[뜨개질하는 소년(Made by Raffi, 2014]은 크레이그 팜랜즈가 쓰고 마가렛 체임벌린이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책과 콩나무에서 번역출간했다.
크레이그 팜랜즈(Craig Pomranz)는 이 그림책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가수이자 배우이기도 하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편협한 성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들의 성장을 제한한다고 여긴다. 그런 관점에서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썼나 보다.
주인공 소년인 라피는 뛰어놀고 소란을 피우는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다르다. 그는 키도 작고 머리 기르고 밝은 색을 좋아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그런 라피는 어느날 뜨개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뜨개질에 관심을 보이는 라피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뜨개질을 하겠다면서 뜨개바늘과 실을 사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사준 부모님. 그림책 속의 어른들은 흔히 '남자아이라면 이래야 돼'라는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로 보인다.
어렸을 때 남자조카가 딸기 머리핀을 가지고 싶어했을 때 내 남동생은 탐탁지 않아했던 기억이 난다. 남동생은 남자아이는 딸기 머리핀이 필요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에 내 조카는 미술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고 옷차림이나 장신구에도 자신의 취향이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좀더 자유롭게 키웠다면 미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쪽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남동생도 미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고 미대를 진학하고 싶어했었는데 아버지는 딸은 미대를 보낼 수 있지만 아들은 미대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내 작은 아버지는 역시나 미적 재능이 뛰어났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조부모는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3대에 걸쳐 부모의 고정관념이 자녀의 미적 재능을 가로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림책 속 라피는 라피의 능력과 관심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라피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반 아이들도 이해하게 되고 라피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해피엔딩.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사람 개개인의 재능을 성역할 고정관념에 가두기에는 훨씬 더 다양하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개인적 불행이자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그림책은 어른들이, 아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꼭 봐야 할 그림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