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감성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누드화'를 보는 올바른 관점

Livcha 2022. 12. 25. 12:25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책표지

크리스마스날, 오전 크리스마스 영화를 볼까 하다가 갑자기 친구에게 빌린 이 책이 눈에 밟혔다. 

제목이 쇼킹하다.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아마도 이 책을 펴낸 한뼘책방에서 이 책을 더 많이 판매하려는 의욕에서 제목을 선정적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2019년에 발행되었다. 표지 디장인에도 좀 신경을 썼었으면 좀더 책이 잘 팔리지 않았을까 싶지만...

표지와 달리 책 내부의 디자인은 나쁘지 않고 읽기 좋다.

아무튼 이 책은 선정적인 책이 아니라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누드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누드화를 제대로 보는 올바른 관점을 제공한다.  저자에 의하면 '누드'는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를 기준으로 한 남성만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적 욕망의 소유자라는 입장에서, 남성을 시선의 주체로 놓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이미지'라고 정의하고,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을 '누드'로서 표현한 그림을 누드화라고 표현한다. 

저자 이충열은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로 소개한다. 동시에 현대미술가이기도 하다. 한예종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안다.

저자의 글솜씨가 좋아서 가독성이 좋다.   

책을 손에 쥐고 읽다 보니 1시간(190페이지)으로 완독이 가능하다. 그 만큼 내용이 흥미롭다는 뜻이다. 

 

외국의 여러 유명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작품들을 여기서 만나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당시에 보았던 '유디트'와 관련한 그림들은 적장을 목을 베는 섬찟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데 왜 목을 베는 여자가 옷을 벗고 있는지 좀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유디트의 스토리를 잘 알지 못한 데다가 그런 그림이 생산되게 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깊이 있게 그림감상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면서도 인물이 비정상적이고 마치 만화책에 나오는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보티첼리가 비너스를 그렸을 때는 인체 해부학이 발달하기 전, 인체 모델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된다. 

또 어릴 때 교과서에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보면서 여자는 옷을 벗고 있는데, 남자들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이상하고 웃기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그림은 바로 블랙 코미디였다. 마네는 여성을 현실적으로 담고 남성들의 허위의식을 조롱했던 것이란다.  

저자는 포르노그래피를 비판한다.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에 의한 여성 강간 신화를 조장하고 폭력과 섹슈얼리티를 연결'시킨다고 본다. 정복당하기를 기다리는 성적인 노예로 재현해서 여성의 수동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과 외설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여성이 온전히 성적 대상이 되어 남성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면 예술, 여성의 능동성이 드러나서 남성의 감상이 방해되면 외설이 된다고 정리한다. 물론 이때 남성은 이성애자 남성이다. 

 

'누드' 이미지가 과연 성적 대상화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한 테스트로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벡델 테스트'와 자신이 공안한 '충열테스트'를 제안한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는데,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오는가?

2. 여성 캐릭터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3. 그 대화의 소재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인가?

 

충열 테스트는 누드가 성적대상화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1. 필연적인 노출인가?

2. 표정과 동작의 의도가 명확한가?

3. 직업, 나이, 성격 등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있는가?

이 중 두 가지의 질문에 No가 나오면 성적대상화를 한 것으로 본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가 분석한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의 특징이 흥미로운데, 다음과 같다.

1. 도구화: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

2. 자율성 부인: 자율성이나 자기 결정권이 없는 것으로 취급

3. 비활성: 행위성이나 행동 능력이 없는 것으로 취급

4. 대체 가능성: 다른 것 혹은 유사한 것과 대체 가능한 것으로 취급

5. 가침성: 깨부술 수 있고 침입가능한 것으로 취급

6. 소유: 타인에 의해 소유되고 거래될 수 있는 것으로 취급

7. 주체성 부인: 경험이나 감정이 고려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취급.

 

본의 아니게, 충동적으로 크리스마스날 진지한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진지함 만큼이나 흥미롭다. 

앞으로 누두 이미지를 보면 이 책에 배운 테스트를 적용해봐야겠다. 

 

아, 그리고 아르테미시아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큰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