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무레 요코의 책들을 읽다가 사노 요코의 책이 뭐가 있나? 검색해 보다가 사노 요코의 책도 한 번 읽어 보자 싶었다.
그러고 보니 사노 요코(1938-2010)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은 지가 제법 되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죽는 게 뭐라고]를 발견했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13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마음산책에서 2015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사노 요코가 사망한 이후에 출간된 책이었다.
사진을 보니 사노 요코의 인상이 좋네.
사노 요코의 그림책을 좋아했는데, 어쩌면 그녀의 에세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죽음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써내려간 글도 힘이 빠지지 않아서 놀랐다.
정말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사는 게 뭐라고]에서 사노 요코는 일흔에 죽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을 이뤘다. 72세에 죽었으니...
아직도 나는 몇 살에 죽는 게 꿈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해서 유감을 갖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긴 한 것 같다.
적어도 내 부모보다는 오래 살고 있다.
노트>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인도 의사도 모른다.
환자의 언어 건너펴넹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누구도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누구의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분명 이 세상의 자연이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밀려들지 않을까.
내일 이곳을 떠나자.
(...)
그래도 나가자. 이런 아름다운 자연에 빨려들고 싶지 않다.
('모두들 일정한 방향을 향해 미끄러져 가는 듯')
내가 죽은 후에도 아지랑이가 낀듯한 봄날의 산이 몽실몽실 웃음 짓고, 목련꽃도 벚꽃도 변함없이 피리라는 생각을 하면 분하다.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 중에서, '사노 요코씨에 대하여')
죽음 직전에 자연이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험은 아름다울 것 같다.
설령 분하다 싶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