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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거침없이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 글

Livcha 2024. 9. 12. 12:32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 표지

무레 요코에 이어 사노 요코의 책도 읽기 시작했는데, 사노 요코의 문학성은 거침 없는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자신도 부모도 그 누구도 포장하지 않는 글. 그래서 흥미롭지만 때로는 읽기 힘들기도 하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1985년에 출간되었으니까 벌써 40여년 전 책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읽어도 그 글이 너무 세련되었다. 

당시 사노 요코는 40대 중반. 

사노 요코는 그림책으로 알게 된 작가이다. 

그녀의 그림책은 여러 권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그림과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그의 에세이집도 그 어떤 에세이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도서관에서 함께 빌려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은 한 편 읽고 던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명성에 기대서 글을 출간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은 그 어떤 에세이집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나 보인다. 거침없는 솔직함과 그 솔직함이 이끌어내는 블랙 유머, 그녀만이 쓸 수 있는 문체가 아닐까.

'마당'에서 '삼도천 모래밭에서 내내 돌 쌓기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역시 죽으면 그냥 흙이 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 피곤할 것 같다. 

'오리 새끼'에서 안데르센 동화집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어린 시절 그 어떤 동화책보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좋아했었다. 안데르센 동화집 가운데 '인어공주'나 '미운 오리새끼'같은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더 섬찟한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구두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흰 빵을 밟아 지옥에 떨어진 이야기, 죽인 사람의 목을 자스민 화분에 넣어 숨기는 이야기, 청혼하러온 남자들을 죽여 나무에 매달아 해골이 나무 여기저기 걸려 있는 이야기 등, 안데르센 동화집은 괴기스러운 이야기로 가득해서 좋아했다. 지금도 괴담 읽기를 즐기지만 어릴 때도 괴담 읽기를 좋아했었다. 같은 안데르센 동화집을 읽어도 각자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많은 짧은 글 가운데 '유화물감'이 좋았다. 작가가 얼마나 독창적인 사람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그림이 좋았는데,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그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원화를 다 나눠주고 없다고 하면서 '나 스스로 소장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로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있다. 결국 작가는 소장하고 싶은 그림을 그렸을까?

'슈욱 사라진다'에서 '나는 나인 채로 할머니가 되는 거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누구나 자신인 채로 늙을 수밖에 없다. 다만 자신인 채로 늙으면서 그 늙음에 대해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한 노년이 될 것이다. 

늙으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SF소설도 쓰겠다'는 작가의 소망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리고 판타지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떠올렸다. 

과연 작가는 그 소망을 이뤘을까?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이가 들어가는 경험은 그 누구에게도 낯선 경험이라서 젊은 시절에 꿈꿨던 노년과는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젊은 시절의 노년에 대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노년의 삶은 그때그때 꿈꾸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딱 하나 내가 지금부터 유념할 것은 물욕을 갖지 않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남기는 것은 그것이 아주 적은 돈이든, 사소한 일용품이든 처리하기가 성가시다. 내가 죽으면 동시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작은 종잇조각 하나, 팬티 하나 남기지 않고 '슈욱하고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면 좋겠다'하고 생각한다. '

죽음이 사라지듯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 죽음이 가능하기나 할까. 

우리는 세상에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후기'에서 사노 요코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실상의 나는 흔하디 흔한 지나치리만치 산문적인 인간이며, 이 세상의 괴로운 일들을 충분히 맛보면서 그 현실을 기꺼이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것 없는 평균적인 일본인의 생활을. 별 것 아닌 희로애락에 울고 웃으며, 생각해 보면 창피한 일쪽을 더 많이 하면서 넉살 좋게 살아온 사람이다.'

 사노 요코는 자기답게 자신의 삶을 꿋꿋이 잘 살아낸 사람으로 보인다. 비록 실수도 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