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알리스 슈바르처 [아주 작은 차이]를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이프]에서 2001년에 번역출간한 책을 통해서였다.
당시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의 7,80년대 여성의 삶이나 21세기초 한국의 여성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2007년 [일다]에서 개정증보판을 출판했고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와 난 긴 시간 동안 이 책을 서가에 꽂아두기만 했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 개정증보되었다고 해서 다시 볼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코로나시대는 집에 쌓인 책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때인 만큼 새책으로 낡아가는 책이 안 되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거의 20년만에 다시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서문의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 "여자와 남자로 인류를 구별하는 일에 반기를 들며".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여자(XX)와 남자(XY)를 양분하면 그 구분에서 빠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XO, XXY와 같은 사람.
하물며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다시 말해서 '섹스'가 아니라 '젠더' 차원에서 여자와 남자의 이분화는 참으로 답답한 틀이다.
스스로를 여자 또는 남자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시 다수이지만 하지만 여자와 남자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을 감안한다면 남녀 젠더구분은 너무 단순한 잣대다.
게다가 남녀구분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성역할을 고정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며 성차별을 제도화하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갈 뿐만 아니라 XO, XXY와 같은 존재하는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다양한 젠더의 존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남녀 이분화는 인권적 차원에서도 심히 문제가 많다.
이 책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는 않지만 적어도 여성이 성차별적 문화와 제도 때문에 고통받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무려 40여년 전 독일의 여성들의 이야기이긴 해도 오늘날 한국 여성의 이야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여성들의 경력단절, 성매매여성의 착취, 데이트강간, 부부강간, 육아와 가사노동을 여성의 일로 치부하는 일, 질오르가즘의 신화 등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진행중인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스스로를 이성애 여성이나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일독을 추천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읽기도 쉽고, 저자 역시 글을 흥미롭게 잘 쓰는 사람이라서 읽기가 힘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무척 흥미롭기까지 하다.
예전에 읽을 때도 책을 덮고 나니까 답답했었는데, 지금 읽어도 그 감정은 여전하다.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인가 보다. 오히려 오늘날은 성차별이 현재진행형인데도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강조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만 증폭한 상황이다. 페미니즘은 원래 성차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남녀평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생겨난 이론이자 실천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앞으로 20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답답함이 계속될까? 아마도 그렇다,에 한 표.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