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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지글러 [흑사병]

필립 지글러가 쓴 [흑사병(한길 historia, 2003)]은 14세기 중후반 유럽 전체에 흑사병이 미친 영향을 개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문 사학자가 쓴 책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쓴 책이라서 사적 고찰이 전문가 못지 않다. 벌써 전 부터 흑사병이란 전염병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했었는데, 전염병에 대한 책에서 흑사병관련 단편적인 글들은 읽어 보았지만 이렇게 흑사병만 파고든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흑사병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을 것이라는 것, 흑사병이 유럽으로 하여금 기독교 중세를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흑사병과 같은 기세등등한 전염병이 창궐한다면 인류문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 전염..

늙음과 죽음 2021.05.20

[사생활의 역사1 로마제국부터 천 년까지]

내가 좋아하는 역사학자인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책임 편집했다는 [사생활의 역사]. 새물결 출판사에서 총 5권으로 번역출간한 지도 제법 세월이 흘렀다. 불어판은 80년대에 출간되었으니, 참으로 오래 전 책이다. 1권만 해도 총 896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권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로마제국(폴 벤느), 2부 후기 고대(피터 브라운), 3부 로마 제국 시대 아프리카 지역의 사생활과 가옥 구조(이봉 테베르), 4부 서방의 중세초기(미셸 루슈), 5부 비잔틴 제국 10-11세기(에블린 파틀라장) 에블린 파틀라장은 사생활은 시대마다 사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생활은 권력, 종교, 거주공간, 가족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사생활, 사적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르주 뒤비 [12세기의 여인들] 2권

요즘 12세기부터 14세기에 걸친, 즉 중세 말기 책에 꽂힌 김에 조르주 뒤비의 [12세기 여인들]1권에 이어 2권을 읽었다. 어렸을 때 역사 소설은 좋아하긴 했지만, 역사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조르주 뒤비가 역사책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조르주 뒤비(1919-1996)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그는 프랑스 역사학자로 중세사 전문가다. 특히 서유럽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를 다룬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2)을 높이 평가하는 그는 페르낭 브로델에 이어 3세대 아날학파에 속한다. 조르주 뒤비는 역사학자로서의 독창적인 관점을 펼치고,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그의 독창적인 역사연구에 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그의 '정신적 표현'이라는 개념이 ..

임지현과 사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

사실 대담집 읽기는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이 집안에 있어 그냥 버리기도 아쉽고 해서 읽기로 했다. 읽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롭다. 내셔널리즘, 옥시덴탈리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민족과 국민이란 개념이 품고 있는 폭력성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지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내셔널리즘에 저항하는 진정한 실천이 뭐란 말인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소위 지식인들의 한계가 이런 것이겠지... 자신들의 일상적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셔널리즘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 통제에 맞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들려주면 더 알찬 대담이 되었을 듯. 노트> 사카이 나오키 서문: 식..

기타 2021.05.17

조르주 뒤비 [12세기의 여인들] 1권

조르주 뒤비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역사가다. 너무 낯설어서인지 서양중세사에 관심이 많은데 12세기라는 중세 후반부의 이 시기, 무척 흥미로운 것 같다. 12세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니... 뒤비는 역사가 놓친, 숨겨진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가 소개하는 여인들은 알리에노르 다키텐, 마리-마들렌, 엘로이즈, 이죄, 쥐에트, 소레다모르와 페니스다. 12세기 남성들의 글 속에 남아 있는 그림자같은 여성들의 삶을 조르주 뒤비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뒤비가 풀어낸 12세기 여성들의 이야기, 재미나다. 당대 대학자인 아벨라르와의 사랑 때문에 유명한 엘로이즈와 12세기 영국 통일에 기여한 트리스탕이라는 기사와의 사랑 때문에 유명한 이죄(이졸데)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뒤비의 해석이 무척 궁금했다. 읽고 보..

빅토르 프랑클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빅토르 프랑클은 '로고테라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정신과의사다. 이 사람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가 1997년에 92세로 사망했는지는 그동안 알지 못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뽑다가 빅토르 프랑클의 회상록을 발견했다. 그가 90세때 마지막으로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가 인생의 끝에 어떤 글을 묶어서 냈는지, 그리고 그가 늙음과 죽음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책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그의 죽음물음은 죽음의 공포, 불안과 관련된다기보다 삶의 공허와 관련되었다. 삶의 공허가 삶의 의미를 박탈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의 죽음물음이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이 삶의 의미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