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범양사, 1994)]를 읽어보려 했는데, 그동안 정말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 책은 1979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니, 이 가설이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40년도 넘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94년에 출간된 책이니까, 이 책도 벌써 20년도 넘은 책이다. 책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생명'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명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제임스 러브록도 "생명의 본질에 대하여 씌어진 것이 너무 적다"는 데 놀랐다고 적고 있다.
아무튼 생명과 관련한 책들을 하나 둘 읽어가는 중에 지구를 생명체로 보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러브록은 대기의 조성을 분석하여 생물체의 존재를 탐지하고자 한다.
그는 지구의 대기성분을 지구 생명체들이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것으로 본다.
대기권을 생물권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지구 대기권이 지표면의 생물들, 즉 생물권에 의해 능동적으로 유지, 조절된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래서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를 '가이아'라 이름붙인다.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은 지구를 생명체로 보려하는 아름다운 상상으로 보인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나는 이 상상이 매혹적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비록 그가 핵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그러한 생각 역시 인간중심이 아니라 지구중심의 생각에 기초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인간이 핵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않으리라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간의 자연 훼손은 과학기술의 열광보다 축산업의 과도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열대지방과 습지, 대륙봉을 지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저자.
'우리가 갖는 총체적 지성의 어느 정도나 가이아의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혹시 인간은 가이아의 신경계와 두뇌에 해당하는 존재로 환경 변화를 의식적으로 예지하는 역할을 떠맡은 가이아의 부분이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난 그가 기독교 문명의 영향 아래서 살아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 역시도 인간을 다른 생명체보다 더 우월한 어떤 존재로 간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저자는 에필로그의 마지막에서 우리의 미래 후손이 가이아와 공존하는 삶을 살리라 낙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과연 우리는 낙관할 수 있을까?
Notes>
버널Bernal, 슈뢰딩거Schrodinger, 위그너Wigner와 같은 물리학자들의 생명에 대한 정의: "생물이란 개방적 또는 연속성의 시스템으로써 외부환경으로부터 취한 자유 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하고, 더불어서 이의 분해 산물을 체외로 배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그러한 양식의 기능을 갖는 구성원들"('서론' 중)
"생명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에너지 흐름의 양뿐만 아니라 질 또는 그 잠재력이 만족되어야 한다."
"바이러스로부터 고래에 이르기까지, 참나무로부터 조류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든 생물은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실체는 자신의 전반적인 필요에 적합하도록 지구 대기권을 조작할 수 있고 또 실체의 구성원들 각자가 갖는 능력의 합보다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가설"('서론' 중)
"가이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한 총합체"('서론' 중)
"환경 오염이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듯 그러한 도덕적 타락의 산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생물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회피할 수 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태초에는......'중)
"많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그처럼 지구상의 생물들을 모두 멸망시킬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가이아의 인식' 중)
"진실로 강인하고 신뢰할 만한 지구의 일꾼은 바로 토양 속과 바다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미생물들인데, 그들 주위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자외선 복사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다."('가이아의 인식' 중)
"대기 중에서 산소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은 곧 능동적 조절 시스템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다."('대기권' 중)
"생물 세포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 수용액이나 외부 환경을 막론하고 그것의 염분 농도가 6퍼센트를 잠시라도 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은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다."('해양' 중)
"우리 인류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지역은 열대지방의 삼림과 대륙연변의 바다다"('가이아와 인간' 중)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제아무리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하고 있다 하처라도 단순히 가이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가이아와 공존을 ......' 중)
"환경 보호 운동은 대부분 잘못된 영농 방식들에 의해서 야기되는 잠재적으로 훨씬 심각한 환경 문제들에 대해서 침묵하는 반면, 불화탄소산업이나 여우 사냥과 같이 대수롭지 않은 목표들에 대해서는 왕왕거리며 몰아붙이는 경향이 농후하다.('에필로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