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래된 우물]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이 '50'을 소재로 쓴 소설

Livcha 2022. 7. 12. 14:00

[오래된 우물]은 2009년 일본 추리소설의 명가인 '카파 노블스'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해서 출간한 책인데, 모두 아홉 명의 저명한 미스터리 작가들의 재미난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창립 50주년의 기념책에 걸맞게 '50'이란 숫자를 포함한 소설들이 담겼는데,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는 미야베 미유키의 글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야베 미유키 이외에는 아는 작가는 없지만 일본의 유명한 작가들이라고 하니까 이들의 이력이 궁금했다. 

책에 실린 작가의 이력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오래된 우물'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 이력

사실 이 책에 담긴 9편의 소설 가운데 '오래된 우물'이 가장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타나카 요시이는 일본 SF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한다. 

'오래된 우물'은 소설 속 화자인 '나'가 50년 전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50대째 가계를 이어온 화이트우드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계의 저주와 관련한 이야기.

농민반란에 참가한 자의 딸을 취하고 그 딸을 목졸라 죽여 오래된 우물에 던져 죽인 화이트우드가의 선대 조상에게 죽으면서 앤이 내린 저주는 화이트우드 가문의 50대째 자손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50대째 자손은 저주를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 

작가는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에 뒤바뀐 자손이라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설정을 더했는데, 이 대목이 따분하다. 

그럼에도 난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 대목, 즉 인간의 악의에 대한 언급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유령도, 저주도 재앙도 믿지 않아. 오로지 인간의 악의를 믿지. 인간의 악의는 밤보다도 어둡고 오래된 우물보다도 훨씬 더 깊어. 거기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와 갑자기 사람의 발목을 잡는 거지."

'하늘에서 보내준 고양이'의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 이력

이 소설은 무척 흥미로왔는데, 50의 숫자와 관련해 '50엔짜리 우표'를 소재로 선택했다.

여러 흥미로운 하류층 인물들, 소매치기 남자, 시골에서 상경한 총각, 매매춘 여성, 패티시즘을 가진 변태성욕자, 노숙자가 차례로 소개되고 그 인물들이 살인사건과 연관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충분히 재미나다. 

특히 노숙자의 ABC 등급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가재도구와 생활공간이 있어 제법 인간다운 삶을 사는 A급 노숙자. 이들은 생활능력도 있고 사회복귀도 가능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해 노숙을 하는 사람. B급 노숙자는 물건이나 음식물을 얻어서 생활하는 자. C급은 완전한 무능력자로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자. 

'도박눈'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력

미야베 미유키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다. 이 작가는 상상력이 넘치고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데 무엇보다 인물을 그려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난 이 작가의 거의 모든 책을 찾아서 읽었다. 따라서 이 단편도 놓칠 수 없었다. 

읽다 보니까 '도박눈'은 이미 읽어본 이야기다. 어디서였을까? 너무 많은 책을 읽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 

'도박눈'은 도박을 부추기는 요괴를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50개의 사람의 눈을 가진 검붉은 색의 이불처럼 생긴 요괴. 이 요괴와 약정을 맺으면 어떤 도박도 이길 수 있다고. 이 요괴를 퇴치하려면 이누하리코 50마리를 모아야 가능하다는 설정. 도박눈을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존재는 고마이누. '고마이누'는 '신사 앞에 마귀를 쫓기 위해 마주 보게 놓은 한 쌍의 사자와 비슷한 짐승의 상'이라고 한다. 이누하리코는 고마이누를 모방한 장난감 또는 장식용으로 만든 종이 인형인데, 바구니를 짊어지고 있는 이누하리코는 아이의 액막이용이라고 한다. 

"고마이누는 신의 심부름꾼이고 바구니는 요괴에 강하지. 그 두 개가 합쳐지면 행운을 비는 물건이 돼. 귀신에게 홀리기 쉬운 아이를 보호하는 행운 말이야."

언제나 그렇듯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는 재미나다. 

'여름의 빛'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이력

아홉 편의 소설 가운데 나는 '여름의 빛'이 가장 좋았다. 

역자 역시 후기에서 이 소설을 추리소설의 틀을 깨뜨린 작품으로 거론했다.

외할머니와 사는 기요타카라는 왕따 소년이 떠돌이개 완다를 정말로 죽였는가?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사진을 소재로 삼았는데, 감광도가 낮은 필름 ISO 50으로 찍은 사진이 의혹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결국 진실을 들여다볼 열쇠가 된다.  

'신신당 세계일주-영국 셰필드'의 작가 시마다 소지의 이력

IQ50인 지적 장애인의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작품. 

휴머니티가 있어 감동적일 수도 있지만 다소 감상적이어서 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눈과 금혼식' 작가 아리스기와 아리스의 이력

결혼 50주년을 축하한 눈이 내린 날, 벌어진 살인사건. 

용의자 가운데 누가 살인범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은 전형적인 추리소설. 

'미도르 언덕 기담-절단'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

이 책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으스스한 이야기. 

추리소설의 작가인 '나'는 이상한 꿈을 꾸고 노료즈카의, 악령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고 요괴도 아닌 존재에 관심을 갖는다. 의사가 들려준 신사 안에서 벌어진 이상한 토막시체사건에 대해 더 알기 위해 50대 형사를 만나 50번 절단해서 50조각이 난 시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50번 절단했는데, 어떻게 50조각이 날까?라는 의문이 생겨나고 결국 50번 절단해서 50조각이 난 시체라면 인간의 사체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는다. 인간의 겉모습과 비슷하지만 머리끝과 발바닥이 달라붙은 이상한 존재에 대한 작가적 상상이 놀랍다.   

'50층에서 기다려라' 작가 오사와 아리사마 이력

제목에서 바로 50이란 숫자란 소재를 50층로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신주쿠 타워호텔 50층. 

'드래곤'이란 별명을 내세운 사기사건에 연루된 청년의 이야기. 

'미래의 꽃' 작가 요코하마 히데오의 이력

30대 중반의 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과연 이 남자는 살해된 걸까? 아니면 자살한 걸까?

아내의 남편 살인사건으로 간주된 사건을 자살사건이라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 전형적인 추리소설. 

사건의 진상을 밝혀 준, 전설의 감시관인 구라이시의 나이가 쉰 살, 이번에는 50살이라는 나이를 50숫자의 소재로 삼았다. 

 

이 소설 제목이기도 한 '미래의 꽃'은 바로 팬지

팬지는 새로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심고 싶은 하는 꽃이라고 구라이시가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재미난 이야기였다. 일본 사람들은 새집 정원은 우선 팬지, 비올라를 심어 가꾸다니, 신기한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오래된 우물]은 무더운 여름날,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