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터레이터인 앤서니 브라운(1946-)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책작가다.
그의 단정한 그림체가 너무 마음에 든다.
앤서니 브라운은 벌써 일흔이 훌쩍 넘겼고, 그의 그림책 [돼지책(Piggy book)]은 1986년에 출간된 책이니까 벌써 36년이나 된 오래 전 책이다.
그런데 이 책 속 가정과 같은 가정이 아직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흔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가사일은 여성의 몫이고 여성이 잘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쉽게 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긴 한다.
그림책 속 가정은 이성애자 부부와 두 아들로 구성된 4인 가족이다.
아버지 피콧씨와 두 아들은 집안일을 전적으로 피콧 부인에게 내맡긴 채로 빈둥거린다.
마치 가사일은 아내이자 엄마가 담당한 것이 마땅하다는 듯이.
피콧 부인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고 피콧씨와 두 아들은 가사일을 할 줄 몰라 방치한 탓에 돼지우리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더러워진 집은 돼지우리로, 그 속에서 지내는 아버지와 두 아들은 돼지들로 묘사한 점이 재치있고 재미있다.
피콧 부인이 돌아오기를 간청해 마침내 피콧 부인은 집으로 돌아오고 온가족이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피콧씨의 가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자동차 수리를 하는 피콧부인의 모습이 무척 보기가 좋다.
여성이라고 반드시 요리를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피콧부인처럼 자동차수리가 더 적성에 맞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이자 아내인 여성에게 요리, 청소, 빨래, 정리를 전적으로 내맡기는 일은 건강한 가정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가사일을 서로 나눠서 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될까?
이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 앤소니 브라운은 남성이다. 남성이 이런 문제 의식을 그림책으로 표현한 것이 놀랍다.
책 시작 부분에게 이 그림책을 줄리아에게 받친다고 되어 있는데, 줄리아는 누구일까? 아내일까?
더는 돼지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