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혹부리 영감]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도깨비가 등장하고 혹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본 그림책은 삐아제 어린이에서 발간한 [혹부리 영감] 그림과 달랐는데 좀더 무서웠던 것 같다.
문구선의 그림은 유머가 넘치는 만화체 그림으로 배경으로 등장하는 호랑이, 늑대, 부엉이도 귀엽고 도깨비도 그리 무섭게 표현되지 않았다. 이 그림책의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든다.
혹부리 영감은 일본 가마쿠라시대(1185-1333)부터 전해져 내려온 동화로 일본의 10대 동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가 처음 거론되는 것은 조선 중기 문인 강항이 [수은록]에서라고 한다. 강항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서 그곳 승려에게서 일본의 유명한 이야기 '혹부리 영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일제 시대때에 들어와서 일본의 내선일체의 근거로 다시 이 이야기가 거론되었고 1915년 이후 [조선어독본]에서 언급되고 우리나라 동화로 자리잡았단다. 어쨌거나 혹부리 영감은 일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도깨비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 문화 속에서 등장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이 이야기가 일본의 이야기라는 것은 금방 유추가 된다.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는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삼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착한 혹부리영감도 나쁜 혹부리영감도 모두 거짓말을 한다.
도깨비는 처음에는 거짓말에 속지만 두 번째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만약 나쁜 혹부리영감이 먼저 도깨비를 만났더라면 이 이야기는 권선징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순서의 우연이 착한 혹부리영감에게 부자가 되고 혹을 떼는 행운을 주고 나쁜 혹부리 영감은 부는 커녕 혹을 하나 더 떠안게 되는 불운을 안겨준다면 이 이야기를 권선징악이라 보기가 힘들 것 같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누구든 거짓말을 가장 먼저 잘 하면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거짓말은 행운의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고, 착하든 나쁘든 운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그릇된 교훈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옛 이야기들이 그렇듯 비판적인 강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