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성빈 그림작가의 책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앞서 [종이에 싼 당나귀], [호랑이와 곶감], [동물 말을 알아듣는 아이]를 포스팅했었다. 모두 전래동화인데, 노성빈 작가가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해학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몽환적이기까지 한 그림을 멋지게 그렸다.
이번에는 비룡소에서 2018년에 출간한 [삼천갑자 동방삭]. 비룡소에서 전래동화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이 책은 35권에 해당된다.

이 그림책의 노성빈 작가의 그림도 너무 멋지다! 도서간에서 빌린 것인데,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다만 이 그림책의 아쉬운 점은 종이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

동방삭의 이야기는 다들 알 만한 데, 60갑자의 3000배를 살게 된 대표적인 장수인물에 관한 것이다.
60갑자의 3000배면 18000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니 무지 오래 살았다.
느지막이 얻은 아들이 채 한 달을 살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저승사자들을 잘 대접하고 애원해서 아이의 수명을 늘린다. 그런데 저승사자들은 식사, 양말, 신발을 얻었다고 100년도 아니고 18만년을 살게 해주다니 정말 넉넉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동방삭은 전한의 무제시절(기원전 156-기원전 87) 실존했던 인물로 유머가 넘치고 재치가 있는 문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실존인물이 중국설화 속에서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어 불멸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 동방삭 설화에서는 아버지가 음식, 돈, 신발 등을 제공해서 저승사자를 대접해 아이의 수명을 30년 늘리는 데 성공하지만 저승사자가 잠든 사이 30년을 3천년으로 고쳐 적어 동방삭의 수명이 3000살이 되었고 오래 살아서 똑똑한 인물이 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설화를 보면 저승사자가는 어이 없이 넉넉한 존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아버지 덕분에 동방삭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같다.

그림책에서는 동방삭이 오래 살아 똑똑해져서 저승사자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존재가 되었기에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로 하여금
강물에서 숯을 씻고 있으면 호기심 많은 동방삭이 나타날테니까 그때 잡으라고 명령한다.

설화 속에서는 저승사자가 동방삭을 잡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림책 속에서는 동방삭이 저승사자의 계략에도 잡히지 않고 도망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국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수명은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담긴 동방삭 설화. 연명치료가 가능한 오늘날, 삶의 질과 무관하게 거의 무한히 목숨을 늘릴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의학의 사고방식이 이미 예전 사람의 머릿 속에 있었나 보다. 저승사자를 잘 꾀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잘 만나고 의술의 혜택을 누리면서 목숨을 늘리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강렬하다. 하지만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