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김열규의 책 [노년의 즐거움(비아북, 2009)]을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책 [아흔즈음에(humanist, 2014]도 읽게 되었다.
1. 그런데 책을 펼치면서 내 눈에 자꾸 박히는 표현, 동일 단어 반복하기
쌓이고 쌓였다, 굵고도 또 굵다, 싱그럽고도 또 싱그럽다, 바라고 또 바란다, 뻐기고 또 뻐겨도, 푸르고 또 푸르다, 드물고 또 드문,
깊고 또 깊어서, 바래고 바랜, 덮치고 또 덮쳐 등등
처음에는 이 표현 때문에 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서 곧 글에 집중해 끝까지 무사히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글 잘 쓰는 작가는 자기 글에 대한 고집이 있으니까, 편집부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또 김열규같은 작가의 글에는 더더욱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든을 넘은 노인이니,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을테고
편집부에서 양해를 구하면서 손을 좀 보아도 좋았겠다 싶다.
독자의 입장에서 불편하니.
2. 아흔을 목전에 둔 노인의 글이라니 더욱 읽고 싶었다.
아흔을 앞둔 노인의 심정은 어떨까 싶어서.
그런데 알고 보니 김열규는 32년생으로 2013년에 사망했으니 만 81세로 아흔이 되기에는 한참 먼 나이였다.
아흔까지 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죽음을 앞둔 나이에 죽음을 어떻게 사색하고 나이듦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는지 정말 궁금했다.
책에는 나이듦, 죽음, 글쓰기, 추억, 주변 사람들, 자연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독하고 추억에 기대고 자연에게서 위로를 받고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다들 비슷한가 보다.
그런데 저자의 독특한 점은
평생 글을 써온 사람이라 끌까지 글쓰기에 집중했다는 것.
일, 즉 글쓰는 일에 대한 욕심이 과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이상하다.
죽음을 제대로 준비해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3.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문득문득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묵념이랄 것도 없고 묵상이랄 것도 없는 채로 우두커니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 구부린 허리 위로 숙인 고개 위로 여생을 비추는 여광이 고여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여생이라는 말 떨어내고 싶은 데도')
"누운 채로 밤을 넘기기가 고되고 힘겨워지면서 시름시름 앓는 기분이 든다.
불면증에 시달리다보면 그만 잠이 병이 된다.
하필이며 잠을 질병으로 앓게 되는 나이, 그것이 다름 아닌 노년일까, 자못 궁금하다."
(불면증, 그것도 병인가)
"줄줄이 찍힌 문자들 가운데서 잘못 찍힌 글자를 알뜰히 찾아내는 손길과
잔디밭에서 잘못 자라고 있는 잡초를 뽑아내는 손길이 서로 닮아 있는 것으로 매번 실감되곤 한다.
그래서 나의 컴퓨터 파일은 늘 싱그럽고 또 푸르다"
(잡초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