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 이윤기씨는 내게 재미난 읽을거리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리스로마신화>, <장미의이름으로>,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나는 이 사람이 소설가인 줄은 몰랐다.
소설가였기에 이처럼 읽기 좋은 좋은 번역을 할 수 있었나 보다.
그리스 인 조르바란 인물은 카잔차키스에 의해 놀라울 정도로 잘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가 실존인물이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실제로 작가에게 깊이 감흥을 준 사람 중에 하나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흥미로와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재미야말로 바로 소설책이 안겨주는 것이다.
감흥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것.
인상깊은 구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5)
꺼져 가는 불 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23)
사족>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크레타섬에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유럽문명의 시발점인 미노아문명이 발생한 그곳에 이 대단한 작가가 잠들었다.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