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책 표지 속 그림에 반해서, 또 고양이에게 배우는 행복의 기술이 궁금해서 빌렸다.
[오늘은 고양이처럼 살아봅시다]는 이시쿠로 유키코가 쓰고, 미로코 마치코가 그렸다.
2017년에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앤북에서 2018년에 번역출간되었다.
글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까, 이시쿠로 유키코는 자신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소재로 여러 권의 책을 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책에서도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코우하이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코우하이는 후배라는 뜻이고 시바견의 이름 센빠이는 선배라는 뜻이다. 동물의 이름은 두 동물간의 관계를 통해 지은 것은 처음 보았다. 마치 이 고양이과 개는 서로가 없으면 안돼, 하는 듯.
그림작가 미로코 마치코 역시 고양이와 관련한 책이 여러 권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까 이 작가의 그림책이 다수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었다. 이번 기회에 이 작가의 고양이 관련 책을 좀더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바로 상호대차로 두 권을 신청했다. 가까운 도서관에는 이 작가의 그림책이 없어 아쉬웠다. 내가 신청한 책은 [내 고양이는 말이야] [고양이 관찰일기].
개성 있는 그림으로 상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채색 그림은 덜 마음에 갔지만 만화체로 그린 그림은 재미있고 귀여워서 호감이 간다. 이 책에 실린 고양이 그림도 정말 귀엽다.
작가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주변 고양이, 길고양이를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정리해본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고양이를 연구하는 과학도서는 아니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고양이의 행동과 마음이 작가가 이해한 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스스로 알게 되고 깨달은 바를 적어 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
우리 인간은 사실 다른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니, 이해하기 어렵다.
어차피 타자의 이해란 자신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고양이라는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강독의 경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해했다고 해도 그로부터 무언가를 깨달으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작가의 고양이로부터 배운 지혜 역시 그런 식으로 이해하기로 하자.
'오늘은 고양이처럼 살아봅시다'의 한글번역서 제목이 어쩐지 원제가 아닌 듯해서 원제를 찾아보니, '고양이는 기뻤던 일 이외에는 기억하지 못한다'이다. 아마도 이 책의 첫번째 글'고양이는 기뻤던 일만 기억한다'에서 따온 제목인가 보다. 이 제목이 된 말은 수의사가 작가에게 들려준 말이다. 수의사의 말대로라면 고양이는 힘들어서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되는 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도록 지켜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 말을 통해 고양이는 괴로운 일에 얽매이지않고 기뻤던 일만 기억하고 살아간다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고양이의 지혜로 생각한 모양. '아전인수'격이지만 뭐 어떠리.
같은 현상도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작가는 수의사 말의 본래 의도보다는 괴로운 일에 얽매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좋았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고 스스로에게 충고하는 계기로 삼은 듯하다.
'적당히 무시한다'의 글은 관계의 거리를 이야기한다.
고양이 끼리도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낸다는 것. 나무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잘 자란다.
작가는 인간들끼리도 '딱히 가까워지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고양이는 타이밍을 기다린다'에서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4살이라고 쓰고 있다. 굶주림, 추위, 더위 때문에 그렇다고. 이전에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길고양이의 수명은 3-4년이라고 한다. 대부분 물을 잘 먹지 못해서 신장이 망가져 죽는다는 것.
어쨌거나 길고양이나 노숙인이나 길에서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는 타이밍을 기다린다'에는 평소 길고양이를 돌보는 노인 유리코씨가 집을 처분하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길고양이 스미레를 함께 데려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소 살던 곳에서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겨진 스미레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스미레가 좀더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해보인다. 유리코씨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떠날 때를 안다'의 글 속 고양이처럼 인간 역시도 떠날 때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오늘날 많은 인간들은 그 떠날 때를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수명을 늘리고 싶어한다는 문제가 있다. 나도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죽음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되서 좋은 것 같다.
인간보다 수명이 짧으니 대개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맞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내 주변의 사랑하는 존재가 내 곁은 떠나듯 나 역시도 때가 되면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죽음을 진지하게 생가할 기회.
'고양이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산다'라는 글에서 작가는 꽃을 먹고 종이를 뜯어먹고 뱉거나 가구를 긁는 등 사람을 귀찮게 만들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고양이는 심심해서 즐기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정리한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즐기지 않고서는 삶을 잘 살아낼 수 없다. 다만 그 즐거움 인간과 고양이가 다를 뿐. 인간들끼리도 즐기는 내용이 같지 않다.
고양이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사람은 즐기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작가.
사람 역시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생존이 해결되면 그 다음은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 이외 달리 무엇을 할까.
'고양이는 짐을 꾸릴 필요가 없다'는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양이는 배가 고프면 밥을 배불리 먹고 마음이 편하면 잠을 실컷 잡니다.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 따위는 없습니다. 베개가 바뀌면 잠을 못 잘 거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사람의 대단한 머리로 생각해낸 것은 결국 사람을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정말 물건에 치여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꼭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집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짐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집사가 짐을 관리하면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내게도 집사가 있다면 짐이 좀더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고양이 만큼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어떤 짐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미로코 마치코의 그림이 사랑스러워서 여러 그림을 찍어 올려두지만 특히 책장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아주 좁은 곳에 몸을 끼워두는 고양이.
저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옷장속에 들어가는 자는 것을 좋아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 편안했던 것 같다.
원초적인 행위가 아닐까도 싶다.
'고양이는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에서 작가는 '우리는 고양이에 대해 이것저것 제멋대로 상상하고 마음대로 걱정하고 불쌍하게 여깁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 작가가 쓴 이 책이야말로 작가 마음대로 고양이에 대해 상상한 이야기를 담은 것.
그건 그렇고, '목숨을 걸고 현재를 살아가는 고양이의 모습은 늠름하고 아름답습니다'라는 구절이야말로 작가 멋대로 생각한 결과물로 보인다. 왜 길고양이들이 집고양이가 되면 길고양이이길 포기할까. 고양이나 사람이나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갈구하기 마련. 생존 본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길에서 사는 것이라고 봐야 좀더 합리적인 추리 아닐까 싶다.
그리고 '고양이는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간다'로 책의 마무리를 짓는데, 끝으로 갈수록 작가적 공상이 극에 달하는 느낌이다.
고양이가 과연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갈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양이는 그냥 살아갈 뿐이라는 생각.
작가는 '목숨 걸고 현재를 느름하게 살고 싶고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바람을 고양이에 투영해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그냥 관찰자로서 고양이를 본 대로 쓴 책이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