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왔다.
그토록 사람들이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묘사력이 탁월하다.
이야기를 엮는 재주도 대단하다.
무엇보다 흥미롭다.
나는 대개 장편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반면,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을 선호하는데,
특별히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까닭은 작가가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 때문이다.
하루키의 <잠>이 바로 그랬다.
17일동안 잠을 자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젊은 주부의 독백.
가위눌리는 장면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내가 전에 눌렸던 가위와 너무나 흡사한 데 반해
나는 내 가위눌린 경험을 그처럼 생생하게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불면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집착적 독서, 그리고 금지된 음식 초콜릿에 대한 욕망이 맞물려 돌아가는 대목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독자가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 신선했다.
단숨에 책을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숨을 '훅'하고 내쉬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간직하고 싶은 구절은,
"세계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금까지 굴러왔던 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변화하지 않고 반복된다고 믿는 그 아래, 미세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있는 것이다.
아주 미세한 균열을 감지해내는 예민함은 일상을 한층 역동적이게 만들어 준다.
마음에 칼날 세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