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앙리 보스코 [반바지 당나귀]

Livcha 2021. 7. 31. 14:08

1.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마지막 저서인 [촛불의 미학]을 바친 사람이 바로 앙리 보스코다.

앙리 보스코의 책이 궁금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도서관을 뒤져보니 [반바지 당나귀] [이아생트] [아이와 강] 단 3권뿐이다. 

앙리 보스코가 쓴 책이 무수하건만 이 땅에 번역된 책이 그 세 권이 모두였다.

그래서 난 일단 반바지 당나귀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2. 책을 읽기 시작해서 얼마되지 않아 난 이 작가에 매료되었다. 

프로방스 출신의 이 프랑스 작가는 그곳 자연풍경을 멋지게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계절을 곤충을 빌려 계절을 표현한 대목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바로 풍뎅이들이 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계절, 

누에가 책상 어두컴컴한 곳에서 고치를 치는 계절, 

리고 몽롱하게 가라앉은 교실을 가로지르며 엉뚱한 뒝벌이나 불길 같은 날개를 지닌 누에나방이 갑작스레 날아드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콩스탕탱 글로리오 이야기' 중에서)

 

3.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무척 흥미롭다. 

본당 신부인 쉬샹브르 신부님, 화자인 소년 콩스탕탱 글로리오, 그리고 그 소년의 조부모인 사튀르냉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집 하인인 앙셀므와 하녀 라 페기노트, 그리고 입양된 소녀 이아생트, 

가이욜 다리 너머에 자리잡은 곳에서 천국을 가꾸는 시프리앵 노인, 

그리고 겨울이면 반바지를 입는 당나귀까지.

인물 각각이 얼마나 개성 있는지!

 

4. 특히 시프리앵 노인이 흥미로운 인물인데, 

그는 어느날 이 마을에 나타나서 척박한 산속에 과실수를 심고 동물들을 길들이며 천국을 열망하다가 

어느날 그곳을 모두 불태우고 이아생트를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쉬샹브르 신부에게는 우애가 넘치는 마을이 바로 천국이지만, 

시프리앵 노인에게는 천국은 건설되어야 할 곳이다. 

천국에는 그 어떤 동물도 서로를 해쳐서는 안 되고 그 어떤 사람도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그의 소망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천국의 동물들을 해치는 여우에 대한 증오심으로 뱀으로 하여금 여우를 죽이게 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삼은 아이 콩스탕탱이 아몬드가지를 꺾음으로써 

그는 산 속의 천국을 포기하고 다른 땅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떠난다. 

 

시프리앵 노인은 이상주의자인 인물로 보인다.  

 

시프리앵 노인도 신비롭고, 그가 가꾸는 천국도 비현실적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