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올리비에 아당 [겨울나기] 겨울처럼 힘든 삶

Livcha 2021. 8. 12. 10:32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아당(Olivier Adam, 1974-)의 [겨울나기(passer l'hiver, 2004)]. 

이 작가는 이 단편집으로 공쿠르 단편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카뮈를 떠올리게 하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라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정말로 이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고 간결하다. 

이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는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내는 좋은 표현법이 되는 것 같다. 

어느 코미디언의 죽음, 점점 지쳐가다, 한밤의 여자, 새해 첫날, 입을 다물다, 귀가, 라카노, 소리없이, 눈을 맞으며,

총 9편의 단편이 책 한 권을 이루고 있다. 

단편 속 인물의 일상은 처절할 정도로 힘들고 비참한 느낌을 준다. 

너무 힘들어서 길게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 느낌을 작가의 문체가 말해주는 것 같다. 

작품들의 배경은 겨울이다. 

개개인의 삶의 싸늘함을 겨울이라는 배경이 더해준다. 

과연 이들은 삶의 겨울을 어찌 날까?

과연 봄은 올 수 있을까?

 

"역내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실까 망설이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새해 첫날에 나의 새로운 결심은 이제 다시는 아침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이런 노력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를 한 잔 마셨다. 

억지로 쓴 약을 삼키듯이."([새해첫날] 중에서)

 

이 글의 나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새해 첫날, 술이 아니라 약을 삼키듯 차를 마신다.

어쩌면 그렇게 봄을 희망하는 몸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봄이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희망해보는 것.

책 제목으로 미뤄 짐작해 보면 작가는 겨울이 가리라 생각하나 보다. 아니 가길 원하나 보다.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언젠가 그 고통은 우리 곁을 떠나간다는 믿음이 있는 걸까?

 

나는 [눈을 맞으며]라는 작품이 좋았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대하는 나의 심경,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밤이 되면, 나는 그가 죽을까 두렵다.

낮에도 그렇지만 밤이면 더욱 두렵다.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소스라쳐 깨어난다. 

그럴 때면, 방에서 나와 확인하러 간다. 

발소리를 죽이고 복도를 걸어가서 소리 없이 그들의 방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가쁜 숨소리, 힘들게 용을 쓰며 호흡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안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다. 그것뿐이다."

 

"아버지는 죽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게 빨리 찾아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서 종양이 발견되었을 때, 의사는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해 가을까지는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무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질 때까지는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이 틀렸다."

 

저자가 쓴 이 단락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죽어가는 사람이 정말로 죽었을까봐 불안해 하는 마음, 저는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선고를 듣고 그 선고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 

한 때는 저도 이 소설 속 나와 같은 어리석은 믿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나'는 밤에 집을 빠져나와 걷고 또 바보같이 그냥 시간을 보냅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침대로 다가가지만, 감히 아버지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육신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아버지는 거기 없다. 

아버지는 떠났다."

정면으로 시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시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기회가 된다면 염에 참여하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소중한 기회가 되겠다.

죽음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상실감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바로 제가 그랬던 것처럼.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지금 나는 이미 죽은 어떤 사람을 닮았다.

이제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한참 시간이 흐르면 거울 속에서 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도 큰 위안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개미 한 마리가 뺨을 지나 얼굴 위를 돌아다닌다.

습기가 옷에 스미는 것을, 살갗을 적시는 것을 느낀다.

나는 비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소설의 이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나는 비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는 마치 쏟아져내릴 눈물을 예고하는 듯한다. 

그렇게 충분히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우리는 떠나간 사람을 웃으며 추억할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겨울을 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