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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루스트씨], 프루스트의 마지막 10년을 들려주는 책

Livcha 2021. 6. 24. 12:09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주 오랜 전 일인데, 아직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읽기 전에는 프루스트에 관련된 책이나 그 소설 비평서도 읽지 않기로 결심한 터였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소설도 읽으면서 관련서적도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셀레스트 알바레의 회고록이 [나의 프루스트]다. 

이 책은 원래 1973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번역된 것이 아주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난 이 책을 2017년에 와서야 읽었으니...

셀레스트 알바레는 프루스트가 생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와 이 셀레스트 알바레만 사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책 생각은 프루스트의 사랑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만 사랑으로 여겼던 것 같다.

자신이 천식으로 병약하다 보니 자신을 정성껏 돌봐주는 사람만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진정으로 셀레스트 알바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프루스트의 지극히 이기적인 유아적인 사랑의 대상으로서 셀레스트를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만.

셀레스트 알바레는 1922년 프루스트가 5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을 동행했던 사람이다.

프루스트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생활했고 셀레스트는 프루스트가 죽은 다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기에  그의 사생활이 거의 베일에 감춰져 있었나 보다. 

셀레스트가 프루스트에 대해 증언하고자 했던 것은 82세가 되어서였다. 

죽기전 유언처럼 프루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프루스트에 대한 각종 억측과 거짓을 잠재우고 싶었다고 한다.

1913년 스물 둘에 프루스트의 택시기사였던 오딜롱과 결혼해서 파리로 올라와서는 우연히 프루스트의 편지 배달부가 되고 

그러다가 급기야 프루스트 집에 머물면서 프루스트를 시중들게 된다.

전쟁에 갔다 돌아오는 남편도 나중에는 함께 프루스트의 집에서 지낸다. 

 

프루스트가 먼저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프루스트의 방문을 열고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룰을 지키고

커피와 크루와상, 우유 이외에는 집에서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프루스트의 기회에 맞춰서 식사를 준비했다.

셀레스트는 나중에느 프루스트의 노트를 찾아주며 그의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 마디로 셀레스트는 프루스트의 수족과 같은 존재였다. 

22세부터 30세때까지 프루스트를 헌신적으로 돌봐준 셀레스트에게 프루스트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이었고

그녀에게 프루스트는 특별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그토록 헌신했던 셀레스트를 위해서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책을 완성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프루스트의 삶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죽기 전 2년 동안에는 평소 지내던 오스만가에서 갑자기 떠나야 했기에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임시로 머물기로 했던 곳, 

그곳에서는 천식때문에 난방도 하지 않고 추위 속에서 오직 원고를 완성하는 데만 집중했다.

 

결국 감기를 얻고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셀레스트는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끝내고 나서 살 의지를 잃었기에 죽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프루스트가 치료를 거부한 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항상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뜻에 맞추도록 해온 그였기에 

그는 죽어가는 과정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도 봐도 될 것 같다.

폐렴이 꼭 나쁜 죽음은 아니다. 

병약한 프루스트가 폐렴으로 죽은 것은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셀레스트는 프루스트가 죽어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프루스트는 죽음이 임박하면서 뚱뚱하고 흉측한 검은 옷 입은 여인을 본다.

그 환상은 죽음의 공포가 만들어낸 것이리라.

 

아무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프루스트라는 인물이 자신의 삶, 생명을 걸고 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더 하게 되었다.

 

나는 아래 두 인용구절에 완전히 공감한다.

157 페이지 "살아 잇는 사람들에게 꽃을 보내는 것은 그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방법이지요. 

그렇지만 죽은 사람들이야 꽃을 가지고 무얼 하겠어요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하나의 관습이고 나도 그것을 지키기는 해요. 

그러나 셀레스트, 나는 무덤에다 대고 예배를 드리지는 않아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그 속에 있지 않아요. 

나는 내 추억 속에서 그분들에게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161페이지 "왜냐하면 셀레스트, 잃어버린 낙원이란 자기 자신 속에서 밖에는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이미 죽은 사람들은 마음 속에 살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에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는 현재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우리 마음 속에서만 찾아낼 뿐이다.

분명한 이야기다.

 

이제 읽다 중단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