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심화, 확장 12

[들뢰즈 이후 페미니즘] 들뢰즈 철학에서 페미니즘 이론적 대안을 찾는 시도, 흥미롭지만 지나치다

들뢰즈 철학에 관심이 많은데 페미니즘과 들뢰즈 사상을 연결짓고자 하는 시도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한나 스타크(Hannah Stark)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니아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문학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들뢰즈 철학과 윤리학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의 논문 제목은 "들뢰즈의 차이 존재론과 윤리학의 문제". 영문학자로서 페미니즘과 퀴어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니 관심 분야가 무척 광범위하다. 프랑스 대학교 철학과에서는 푸코는 다루어도 들뢰즈는 다루지 않는 데 반해, 오히려 들뢰즈 철학은 철학과 밖의 예술가, 건축가 등 철학과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영문학 전공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면서 들뢰즈 철학을 다룬..

[에피쿠로스의 네가지 처방] 에피쿠로스 철학을 알기 쉽게 안내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행복한 삶을 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존 셀라스(John Sellars)의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은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전달해준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ourfold remedy. 2021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복복서가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에피쿠로스철학과 스토아철학 사이에는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에피쿠로스가 추구하는 삶은 즐거움이지만 스토아철학이 추구하는 삶은 진지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피쿠로스 철학이 진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스토아 철학은 세계주의를 지향하며 세계 속에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철학은 공동체적 삶과 은둔을 지향한다. 이 책의 저자는..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친구가 책정리를 하면서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를 버리려고 내놓았다. 흥미로운 책이라고 해서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은 1975년 출간된 [Cow, Pigs, Wart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s]를 한길사에서 1982년에 번역출간한 것이다. 친구가 가지고 있던 책은 1984년에 출간된 번역 3판이었다. 요즘은 2017년에 출간된 개정판이 판매되고 있었다.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2001)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다. 칼 막스와 토마스 맬서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고 문화유물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왜 '문화유물주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을지 짐작이 된..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도시에서 즐겁게 살려면?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마즈다 아들리는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도시가 주는 불편함, 불안과 두려움도 있지만 도시이기에 행복할 수 있는 점도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2017년에 'Stress and the city'제목 아래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날로그에서 2018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작가 마즈다 아즐리(1969-)는 어린 시절부터 전세계 대도시를 옮겨다니면서 산 대도시 유목민이랄 수 있다. 그는 대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대도시 스트레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들려주는 대도시에서 행복하게 살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아니, 흥미롭다. 나는 대도시..

[built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구조공학의 매력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리왈이 쓴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은 공학적 기술 발달의 이야기를 저자의 사적인 삶로 적절히 섞어 손에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게 쓰여졌다. 구조공학이라는 것이 생소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 구조공학의 혜택 덕을 톡톡히 보고 살아가고 있다. 도시를 구조공학의 이해없이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학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 지나다니는 터널, 건너는 다리말이다. 우리는 이런 건축물들을 사용하고 보살피는 덕분에 삶을 더 쉽게 영위할 수 있다. 그 대가로, 건축물은 우리 존재의 일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지만 핵심적인 일부가 된다. (...) 우리는 자주 건축물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잊..

[나의 프루스트씨], 프루스트의 마지막 10년을 들려주는 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주 오랜 전 일인데, 아직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읽기 전에는 프루스트에 관련된 책이나 그 소설 비평서도 읽지 않기로 결심한 터였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소설도 읽으면서 관련서적도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셀레스트 알바레의 회고록이 [나의 프루스트]다. 이 책은 원래 1973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번역된 것이 아주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난 이 책을 2017년에 와서야 읽었으니... 셀레스트 알바레는 프루스트가 생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와 이 셀레스트 알바레만 사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 일상생활의 구조(상)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아날학파(L'Ecole des Annales)는 루시앙 페브르(Lucien Febvre, 1878-1956)와 마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에 의해 1920년대말에 시작된 프랑스 역사학의 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역사를 총괄적이고 전체주의적 시선에서 포착하며 사회현상들을 장기적으로 다룬다. 페르낭 브로델은 아날학파 2세대로 분류된다. 그는 단기적 사건보다 장기적인 사회변화, 특히 경제사에 관심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날학파 학자로는 조르쥬 뒤비, 필립 아리에스가 있다.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는 1995년 까치출판사에서..

조루주 뒤비 [12세기의 여인들] 3권

조루주 뒤비는 12세기의 프랑스 여성들의 '불확실하고 일그러진 반영'을 그려보인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12세의 기독교 문명 아래 유럽에서 살아간 여성들은 남성들이 규정한 '욕망과 죄의 존재'로서 억압당하고 통제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2세기에는 여성의 지위가 약간은 상승했다고, 또 어쩌면 행복했을 수도 있다고 조르주 뒤비는 정리한다. 21세기와는 무려 900년의 간격의 있는 기독교 사회 속의 여성의 삶을 살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삶이다. 조루주 뒤비가 당시 성직자들이 남긴 글들 속에서 해석해낸 여성들의 삶은 가히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노트> 여성들의 죄악> 사제 에티엔 드 푸제르에게 여성은 "여성이란 죄악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인식. 여성들은..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일상생활의 구조(하)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인 '제 8장 도시'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도시와 시골의 분업, 시장과 도시의 긴밀한 관계, 대도시와 근대국가와의 관계, 도시내의 계층분화에 대한 서술은 흥미로왔다. 발췌> 제5장 기술의 전파:에너지원과 야금술 "모든 것이 기술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드센 노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고 단조로운 노력도 포함된다. (...) 결국 기술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노동을 적용하는 활동, 태초부터 영구히 계속되어온 트레이닝을 의미한다." "우선 발명이 이루어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사회가 필요한 정도의 수용성을 갖추었을 때 적용이 이루어진다." "기술이란 어찌 보면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사생활의 역사1 로마제국부터 천 년까지]

내가 좋아하는 역사학자인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책임 편집했다는 [사생활의 역사]. 새물결 출판사에서 총 5권으로 번역출간한 지도 제법 세월이 흘렀다. 불어판은 80년대에 출간되었으니, 참으로 오래 전 책이다. 1권만 해도 총 896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권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로마제국(폴 벤느), 2부 후기 고대(피터 브라운), 3부 로마 제국 시대 아프리카 지역의 사생활과 가옥 구조(이봉 테베르), 4부 서방의 중세초기(미셸 루슈), 5부 비잔틴 제국 10-11세기(에블린 파틀라장) 에블린 파틀라장은 사생활은 시대마다 사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생활은 권력, 종교, 거주공간, 가족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사생활, 사적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