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심화, 확장

[사생활의 역사1 로마제국부터 천 년까지]

Livcha 2021. 5. 19. 07:40

내가 좋아하는 역사학자인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책임 편집했다는 [사생활의 역사].

새물결 출판사에서 총 5권으로 번역출간한 지도 제법 세월이 흘렀다. 불어판은 80년대에 출간되었으니, 참으로 오래 전 책이다.

1권만 해도 총 896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권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로마제국(폴 벤느), 2부 후기 고대(피터 브라운), 3부 로마 제국 시대 아프리카 지역의 사생활과 가옥 구조(이봉 테베르), 4부 서방의 중세초기(미셸 루슈), 5부 비잔틴 제국 10-11세기(에블린 파틀라장)

 

에블린 파틀라장은 사생활은 시대마다 사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생활은 권력, 종교, 거주공간, 가족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사생활, 사적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게 사적 공간이란 집으로,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사노동, 돈벌이, 휴식과 놀이 등 모두가 사적인 일이다.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은 혼인관계나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가족으로 생각한다.  집에 들이는 사람은 대부분 각별히 친한 사람들, 혈연가족이나 친구들이다. 그들과 나누는 시간은 사적인 대화로 채워진다. 

사생활의 역사를 읽다 보면 집의 구성, 가족의 범위 등이 오늘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이라고 해도 잠을 자고 성생활이 이루어지는 방만 순전히 사적이고 나머지 부분은 오히려 공적이기도 하다. 하인이나 노예도 가족에 포함되고 혈연을 특별히 중시하지도 않으며 자녀를 입양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가족, 사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가족도 사생활도 사적 공간도 사회와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모해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생활의 역사는 우리의 좁은 생각을 비판적으로 들여다 보고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1권을 읽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묵묵히 읽어 보았다. 5권까지 묵묵히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다. 뒤로 갈수록 자료가 풍부하니 훨씬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노트

1. "물론 부자들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것은 탐욕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네 재산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다. 오늘날 시민들은 부자가 되는 일에만 정신을 쏟고, 날마다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이익만 볼 수 있다면 아무 기술이나 배우고 아무 활동이나 하려 들뿐 그밖의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1부 로마제국 중에서)

부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듯. 

고대로마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했고 공직보다는 부에 더 관심을 가졌다면 현대인은 부를 축적하면서도 공직까지도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 탐욕스럽다고 해야 하나. 

 

2. "불행히도 '가난'이라는 낱말은 라틴어와 프랑스어에서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프랑스어에서 이 말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과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 간의 대조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라틴어에서 가난한 대다수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이 말은 부유하다고 할 수 있는 소수의 내부에서나 상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아주' 부유하지 않은 부자였던 것이다. 가난을 미덕으로 여긴 호라티우스는 설사 야망이 좌절하더라도 위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가난이야말로 그를 구해줄 수 있는 구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배는 두 개의 영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티볼리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사비니에 있었다. 사비니에 있던 집의 넓이는 600제곱미터였다. 기독교적 의미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가난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지평 너머에 있었다."(1부 로마제국 중에서)

사실 이 구절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로마제국에서 가난한 자는 아주 부자가 아닌 부자라는 사실. 호라티우스의 가난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3. "그들은 누구에게나 이자놀이를 했다. 친구 사이나 부자간에도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줬다(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주는 것은 선행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의 경제관념은 지독할 정도였구나, 생각할 대목.

 

4. "로마 제국의 초기 2,3세기 동안의 양식은 세련된 도시풍 그리고 도시 계획과 관련되어 있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명사들은 도시의 귀족들로서, 이들은 무더운 여름철에만 자신의 시골 땅에 머물렀다. 이들 도시민들은 자연의 여러가지 모습 중에서 오직 맘에 드는 측면만을 즐겼다. (...) 이들이 사랑한 자연은 공원과 정원 등 '인간화'된 것들이었다. (...) 사람들은 오직 도시에서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도시는 친숙한 거리와 부산한 익명의 사람들 무리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차라리 공중 목욕탕이나 공공 건물 같은 편의 시설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1부 로마제국 중에서)

편의적 측면에서 도시를 사랑한 로마인, 오늘날 도시인들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5. "연회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일 이상의 것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주제나 고상한 화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삶을 간단히 줄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 이처럼 연회는 먹고 마시는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과시의 장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한 가지 문학 장르가 나타났는데, 문화인이라 할 수 있는 철학자나 문학자가 아주 전문적인 주제를 놓하는 '향연(Symposium)'이 바로 그것이었다. 따라서 연회실은 이처럼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문학 살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바로 이러할 때 정말 연회다운 연회를 베푼다고 할 수 있었고, 평민들의 축제와도 뚜렷하게 구별되었다."(1부 로마제국 중에서)

오늘날도 심포지움이란 이름으로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 심포지움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대목. 플라톤의 '심포지움'으로 좀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6. "게르만 족의 영매들은 바이킹 족이 9세기와 10세기에도 여전히 사용하던 성스러운 룬 문자의 수호자였다. '룬'이라는 낱말은 '비밀'을 뜻하는 동시에 '정다운 여자 친구'를 뜻했다. 이처럼 비밀과 여성 그리고 문자의 신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여성 안에 얼마나 많은 미지의 것들이 간직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오래 전 만났던 점성술을 믿고 있던 프랑스 여성이 룬문자를 그린 돌들을 담은 주머니를 가져와서 내게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여성은 주머니에서 그 돌을 꺼내면서 점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 룬문자를 이용해 점을 치는 일이 게르만족의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y는 재산과 호의, n은 고난과 불행, t는 승리, j는 풍년을 뜻한다고 믿었다고. 기독교화된 이후에도 룬문자로 점을 치는 일은 계속되었고 현대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룬문자로 점치는 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7." 사생활이 얼마나 불확실한 투쟁과 끊임없는 강박관념의 현장이었는지"(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믿음과 미신적 행위는 오늘날도 여전하다.

 

8."금식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경우 대신 상당액을 지불하고 고행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의식의 발전이 더뎌졌다. 왜냐하면 죄인의 의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상습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으며, 금전을 대납하면 면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구원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영구히 굳혀주었기 때문이다.(...)하느님이 아무런 대가 없이 너그러이 베푸신다는 생각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면죄부라는 발상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초기 기독교시절에도 죄를 사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9."게르만 족의 법률에서 도둑질은 살인보다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었고 강간과 유괴는 중혼과 축첩보다 더 위험한 범죄로 취급했던 데 비해 참회 규정서에서는 간음, 온갖 종류의 폭력 행위, 그리고 거짓 맹세를 3대 죄악으로 꼽았다. (...) 육육을 이기지 못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거짓으로 맹세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가장 흔하고, 가장 비난받을 만한 죄였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점이 있다면 비록 부자만이 고행을 돈으로 대납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모든 죄가 죄인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금액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재산상 손실을 주는 도둑질이 더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한 게르만 족도, 돈만 내면 모든 죄를 없앨 수 있다 생각한 초기 기독교도도 모두 현대인의 눈에는 낯설다. 물론 요즘은 돈 있는, 권력 있는 자들은 처벌을 약화시키거나 면제받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 

 

10."당시 사회에서 혼자 지내는 일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드문 일로, 다신교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생각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11.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면적인 인간을 기르는데 침묵의 목적이 있었다. 이것 역시 새로운 가치였다."(4부 서방의 중세초기 중에서)

기독교가 항상 은둔과 침묵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12. "양 한 마리 당 2절지 네 장이 나오니까 키케로나 세네카의 작품을 옮겨 적는 데는 양떼가 필요했다."

오늘날처럼 책이 외면받을 만큼 흔한 시대에 사는 것이 행운임을 깨닫게 하는 구절.

 

13.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는 것과 하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비록 용어가 모호하긴 하지만 하인이라 불리던 자들은 대개 노예들이었다."

가족 개념은 지속적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결혼제도와 혈연에 기초한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핵가족으로서의 가족은 지극히 최근의 관념이다. 따라서 가족의 개념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화가능하다. 

 

14. "집안 공간을 구획할 때 가장 먼저 적용된 일반 원칙은 여성의 존재를 격리시키는 것이었다."(5부 비잔틴제국 10-11세기 중에서)

고대, 중세초기의 여성들은 집밖을 자유로이 다닐 수 없었다. 여성이 자유로이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15. "대다수의 성인의 [생애]는 '휴식'과 은둔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수도원의 최종적인 '휴식' 형태는 독방의 고독에서 발견된다. 수도원의 규칙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해야 하며, 두 사람 사이의 대화나 함께 있는 것이 금지 되었고 파쿠리아노스의 '규칙'에 의하면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5부 비잔틴제국 10-11세기 중에서)

독방으로의 은둔, 고독, 그리고 대화 금지와 침묵,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다른 말로 '휴식'이다.

타인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때만이 쉴 수 있고, 그때만이 신과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 

이러한 생각도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기독교가 등장하고 발전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16. "도시에서 그리고 아마 농촌에서도 부유한 이들은 자기 집에서 태어나고 간호를 받으며 죽음을 맞았다."(5부 비잔틴제국 10-11세기 중에서)

오늘날도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 여유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자기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여유는 집에서 임종을 맞을 필요조건이라고 할까. 

 

17. "비잔틴 사람들에게 환영은 상상이 아니라, 종교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5부 비잔틴제국 10-11세기 중에서)

오늘날도 종교적 경험은 여전히 비합리적 상상을 현실로 고집하고 있다. 

 

18 "사적 신앙은 또한 악마들과의 일상적인 공존을 의미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거리의 축제보다 훨씬 복합적이며 동시에 훨씬 가정적이다. 왜냐하면 '다이모네스'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특히 집 안에, 그리고 버려진 장소, 폐허, 물에 존재하기 때문이다."(5부 비잔틴제국 10-11세기 중에서)

비잔틴 사람들은 악마를 믿어 부적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악마라니...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로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 주목할 대목

중세 초기 게르만 족은 두려운 자연 앞에서 남자는 살인도구, 여자는 출산도구로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이들이 자율적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것은 기독교와 더불어서다. 기도, 고독, 침묵으로 내면 생활을 훈련하고, 정신과 육체의 금욕, 정신과 육체의 노동, 금식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자기변화도 가져왔다. 그런데 기독교는 개인의 완전한 고독이 개인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여겨 점차 은둔이나 은거보다는 규율 있는 공동체 생활로 이끌고 가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