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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풀어낸 시인의 상상력

내게 시 권해주는 친구가 이번에는 신동호 시인의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읽어보라고 한다. 창비에서 2022년에 나온 시집이다. 창비 시선 478.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라는 제목부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그야말로 시집 다운 제목 같다. 신동호 시인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성에 참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원래부터 시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앞선 시집을 읽어본 적은 없다. 시집을 읽다 보니 그의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이 전해져 온다. 시집 제목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도 시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관련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열망을 담은 시가 바로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 나는 이 시가 좋았다. 남북통일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이 그대로 드러나 ..

2023.03.22

나태주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시집

나태주 시인의 시집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는 시인 쓴 시와 시인이 그린 그림이 있는 시집이다. 누구나 손에 들고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만큼 시가 간결하고 그림도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다. 친구는 내게 이 시집을 건네주면서 30분이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 시집은 2018년 동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나태주 시인은 70대로 그동안 출간한 시집만 해도 39권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평생 시를 열심히 써온 시인인가 보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라는 시는 그의 70대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70대에 내 시집이라고 하니 이 시집이 좀더 잘 이해되는 것 같다. 70대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촘촘하고 빽빽한 시를 쓸 에너지는 부족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2023.02.21

이산하 [악의 평범성] 허무와 우울 가득한 시

이산하 시인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1987년 3월 [녹두비평]을 발표했다가 1년 6개월 옥살이를 한다. 이후 시인은 10년동안 절필했다고 한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던 시기에 진실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했던 것이다. [악의 평범성]은 시인이 창작과비평사에 2021년에 발표한 시집이다. 한 때 필화사건을 겪은 시인이기도 했고 이제 60대에 들어선 시인이 어떤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떠올리게 한 책 제목인 '악의 평범성'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시집 안 시인의 사진이 그의 삶의 골곡을 느끼게 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힘들었구나, 싶었다. 시는 지극히 허무의 냄새를 풍겼다. 생과사의 갈림길에 머물러 ..

2023.02.07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장호

도서관에서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잠(1868-1938)의 시집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그의 시가 한 편 실린 시집 [오늘도 가을바람은 붑니다]를 빌려왔다. 이 시집은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시인의 시를 모아서 그림과 함께 담은 시화집이다. 시화집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1월부터 12월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으로 구성된 시화집 가운데 나는 9월의 시화집을 빌린 것이다. 이 시화집의 그림은 카미유 피사로(1830-1903)의 것이었다. 사실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을 직접 본 것이라면 잿빛 하늘의 파리풍경화가 다였던 기억이 난다. 우울하고 쓸쓸한 파리 풍경 그림은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후기인상파인 세잔과 고갱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 시화집을 통해서 본 피사로의 그림..

2022.09.27

고정희 [초혼제] , 80년 광주의 아픔을 위로하는 장시집

낡고 바랜 시집, 창작과 비평사에서 1983년에 출간한 고정희 시인의 [초혼제]. 거의 40년이 된 이 시집을 손에 들었다. 고정희 시인의 이름은 알았지만 이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은 없었다. 고정희 시인(1948-1991)이 지리산에서 실족사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한국신학대학을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를 염원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인 [또 하나의 문인]에 참여하고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일임했던 여성주의자였다. 여성의, 여성주의자적 시선으로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보며 자유의지에 기초한 실존적 고통, 민중에 대한 사랑, 메시아주의, 살아 남은 자의 그리움을 시에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인은 1975..

2022.02.05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20대를 넘어 30대에 들어선 여성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도발적 시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 비평사, 1994)]는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유명했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풀어낸 사랑, 고독을 담은 도발적인 시들이 인상적이다. 읽는 내내 '참 시를 잘 쓰는구나', 싶었다. 삼십대에 들어선 여성이 '잔치는 끝났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유로운 연애, 치열한 사회의식 등 마음껏 살아가던 20대의 시기가 끝이 나고 세상 속으로 편입되는 나이를 30대로 기준 삼았던 걸까? 90년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30대는 요즘의 30대가 생각하는 30대와는 다를 것 같다. 요즘이라면 '마흔, 잔치는 끝났다'라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집은 오늘날 40대 초반이 읽으면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이 시집에서 제일 인상적으로 보았던 시는 김용택 시인의 발문에서 인용한 시로 '새들..

2022.01.16

[박경리시집: 도시의 고양이들] 삶의 고통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나이든 시인의 마음이 담긴 시집

아마도 이 제목 때문에 친구가 내게 이 책을 선물했던 것 같은데... 이 시집은 1990년 동광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니 참으로 오래전 시집이다. 시집에는 "눈 쌓인 거리, 아직은 겨울인가 보다. 그러나 오늘 뺨을 스치는 밤바람은 봄냄새를 싣고 있다. 우리 늘 잘 살자! 아무 이유없이 ***에게 책선물 하고 싶은 밤에"라는 친구의 글씨가 쓰여져 있다.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읽지 않았던 것 걸까? 전혀 시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지난 밤 문득 이 시집을 펼쳐놓고 잠깐 읽어보았다. 친구는 왜 이 시집을 내게 선물했던 걸까? 작가 박경리(1926-2008)의 이 시집은 60대에 나온 책이니, 어느 정도 세월을 살아낸 여인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겪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

2021.12.17

폴 엘뤼아르 [이곳에 살기 위하여]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집 [이곳에 살기 위하여]를 읽었다. 이 시집은 민음사에서 1983년에 출간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빌려 읽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폴 엘뤼아르(Paul Eluard)는 1895년에 태어나 1952년에 사망했다. 폴 엘뤼아르라는 이름은 필명이고 외할머니로부터 빌린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진짜 이름은 Eugène Emile Paul Grindel 그는 프랑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이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 시집은 한글 번역과 더불어 프랑스 원시가 실려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자유'라는 시는 저항시로 유명한데, 나는 이 시를 프랑스에서 어학연수을 받을 때 수업시간에 배웠었다. 다시 읽어 보아도 감동적이다. 마지막 세 단락이 특히. "회복된 건강 위..

2021.09.25

정희성 [돌아다 보면 문득]

시집은 산문집과 달리 읽기에 더 부담이 없다. 시를 권해주는 친구 덕분에 정희성시인의 [돌아다보면 문득(2008)]을 읽게 되었다. 시인이 1945년 생이니 50대 후반의 시들로 보인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주’가 제법 많구나,이다. 시에 주라니.. 재밌다. 1. 시인은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것을 시로 표현하길 좋아하나 보다. 인도, 북한, 안동, 파리 등 여행의 흔적이 담겨 있다. 1부에 많은 시들이 그렇다. ‘성자’ ‘소년’ ‘하회에서’ ‘고구려에 다녀와서’ ‘서경별곡’‘낯선 나라에서 하룻밤’ ‘늙은 릭샤꾼’‘그가 안경너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 2부의 시들, ‘해창리’‘태백산행’ ‘선죽교’ ‘몽유백령도’‘기행’ ‘빠리의 우울’‘언덕위의 집’ ‘임진각에서 얻은 시상’, 3..

2021.08.06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

정호승 시인의 [이 짧은 시간 동안(2004)]은 시인이 1950년생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50대 초반의 시로 보인다. 1. 제목 '이 짧은 시간 동안'은 '물 위를 걸으며'라는 시에서 딴 것같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어쩐지 에수가 떠오른다. 2. 시를 읽다 보니 그의 시를 시각화하게 된다.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보인다. 인간의 푸른 눈동자가 달린 나뭇잎('시각장애인 식물원'), 전기구이 오븐 속에 가부좌한 통닭('통닭'), 사람이 되는 연꽃('연꽃구경'), 냉장고 문를 여니 펼쳐지는 바다('노모의 텔레..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