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심화, 확장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일상생활의 구조(하)

Livcha 2021. 5. 21. 14:37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인 '제 8장 도시'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도시와 시골의 분업, 시장과 도시의 긴밀한 관계, 대도시와 근대국가와의 관계, 도시내의 계층분화에 대한 서술은 흥미로왔다. 

 

발췌>

제5장 기술의 전파:에너지원과 야금술

"모든 것이 기술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드센 노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고 단조로운 노력도 포함된다. (...) 결국 기술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노동을 적용하는 활동, 태초부터 영구히 계속되어온 트레이닝을 의미한다."

 

"우선 발명이 이루어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사회가 필요한 정도의 수용성을 갖추었을 때 적용이 이루어진다."

"기술이란 어찌 보면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그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충분히 사용하지도 못하는 그러한 가능성의 영역(...)"

 

핵심적인 문제:에너지원>

 

축력>

더운 사막은 단봉낙타, 추운 사막과 산악지역은 쌍봉낙타를 이용. 

 

전쟁용 짐승이던 말이 12세기에 어깨에 멍에를 매는 법이 개발되어 흙 고르기, 밭갈기, 수송에 이용됨. 

유럽에서 훌륭한 말은 금값. 

헨리8세 치하의 영국이나 루이 14세 이후의 프랑스, 그리고 18세기에 종마 사육장이 늘어가고 있던 독일 등지에서는 수입한 아람 산 말을 가지고 순종을 길러내려는 시도를 했다. 

브르타뉴, 노르망디, 리무쟁, 쥐라 지방에 말 사육지가 세분화됨. 

프로방스에서는 노새가 말보다 비쌈. 

"일상품의 보급, 도시내의 연결, 마차, 임대 마차 같은 것을 위해서 말에 의존하지 않은 도시는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브르타뉴에서 말사육장을 내세운 소도시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까 말사육장이 있다는 것이 그 도시의 자부심이었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력 모터, 풍력 모터>

물레방아가 풍차보다 더 오래되었고 더 중요했다. 강, 댐, 지류, 수로 등이 많았기 때문. 

"풍차는 물레방아보다 훨씬 뒤에 나타났다.얼마 전만 해도 이것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란이나 티베트의 고지대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

"풍차든 물레방아든 일반적으로 더 중요한 진보는 하나의 모터, 하나의 바퀴를 가지고 여러 도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

->물레방아는 브르타뉴에서 곳곳에서 만났었다. 

신기해서 살펴보긴 했지만 물레방아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지 못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레방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오래된 물레방아를 보존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무, 일상의 에너지원>

"18세기 이전에는 나무는 일상적인 원제료 중 첫번째의 것으로서 소중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19세기가 석탄 문명이라면 18세기 이전의 문명은 목탄의 문명이었다."

"18세기에 슈바르츠발트 지역에서 만든 벽시계들은 톱니바퀴들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고, 더 희귀한 물품으로는이 약한 재질인 나무만을 가지고 만든 둥근 손목시계까지 있다."

->나무로 만든 손목시계라니... 지금도 존재한다면 한 번 구경해보고 싶다. 

 

"어느 나라든지 선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숲을 황폐화시키게 마련이다. 콜베르 시대에는 조선을 위해서 왕국 전체의 숲을 이용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 아두르 강이나 샤랑트 강 같은 조그마한 지류까지 포함해서 배가 다닐 수 있는 모든 강들을 이용해야 했다."

"유럽의 농민들은 끊임없이 나무뿌리를 캐내고 "개간하여" 경작지를 확대했다. 숲의 적은 "공유지"였다."

->우리는 농업 역시 자연을 훼손하는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을 종종 잊곤 한다.

"숲의 부는 수많은 중간 매개인들이 있어서 경제에 포섭될 때라야 의미가 있다. 중간 매개인들이란 가축(이것은 꼭 도토리를 먹는 돼지만을 의미하는 것은아니다)을 치는 목동, 나무꾼, 숯장이, 짐수레꾼 등 모두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로서 그들의 일은 숲을 개발하고 이용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숲은 반드시 이용해야만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광대한 숲이 문명의 손길 밖에 놓여 있었다."

->19세기 이전 사람들은 숲을 파괴해서 이용하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으리라. 

 

"숲의 나무를 일단 베어버리고 나면 이 숲이 다시 형성되기 위해서는 20-30년이 필요하다."

"바젤 출신인 플라터는 1595년 몽펠리에에서 의학공부를 마쳤는데 이 도시 근처에 숲이 없다는 것에 주목"

->그러고 보니 몽펠리에 근처에는 숲이 없다. 그래서 브르타뉴의 숲에 관심이 많았지만 브르타뉴의 숲 역시 오늘날에는 거의 다 사라진 상태다. 브르타뉴의 숲은 전설과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석탄이 목재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한 것은 1887년에 가서의 일인 것이다!"

 

결론> 

에너지원의 중요성에 따라 분류하면, 축력>인력과 도구>목재>물레방아>배의 돛

이 시대에는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앙시앵레짐 경제의 문제는 에너지의 부족. 잉여에너지의 부족.

 

 철:가난한 친척>

1877년 모건이 말한 바와 같이 "철이 가장 중요한 생산물질이 되는 데 성공했을 때, 그것은 인류사의 진화에서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19세기초까지도 "사건 중의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경제문명은 철보다는 훨씬 큰 정도로 직물의 지배하에 있었다."

 

"중국은 야금술이 대단히 일찍 발달했다는 점에서 논의의 여지가 없는 우월성을 가진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5세기경에 이미 철의 주조를 알고 있었고, 일찍이 석탄을 이용했으며, 아마도 기원후 13세기에 코크스를 이용해서 광석을 용해했던 듯하다. 이에 비해 유럽은 14세기까지는 용해된 상태의 철을 얻지 못했으며, 아마도 17세기에 코크스를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대체로 1789년대 이후이다."

 

"전쟁이 좋은 기회가 되어 갑옷, 칼, 창, 화승총, 대포, 탄알 등의 수요가 커졌다.물론 이 급박한 수요는 한때에 불과했다. 생산의 재전환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국은 철과 주철은 부엌도구, 냄비, 솥, 석쇠, 벽날로의 장작 받침쇠, 벽난로 밑바닥 철판, 쟁기의 보습 등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나무의 지배하에 있는 시대.

 

제 6장 기술의 보급:혁명과 지체>

 

"대포가 유럽의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은 1494년 9월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에서였다."

 

세 가지 커다란 기술혁신>

 

화약

"9세기부터 중국인들은 초석, 유황, 숯가루 등을 가지고 화약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화기 역시 중국인이 11세기에 만들었지만, 다만 연대가 명확한 최초의 중국 화기는 1356년에 나타났다."

서유럽의 화약발명은 13세기, 대포의 등장은 14세기초. 

"1630년경에 한 여행자의 말에 의하면, 중국 도시의 성 외곽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대포를 주조했지만, 그것을 다루어본 경험도 없었고 숙련기술도 없었다.""

 

"교회의 종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청동대포를 주조하는 만큼 화기의 급속한 증가는 결국 구리 산업의 발달을 자극했다."

"대포의 발달과 용광로의 발달은 연관이 있었다."

 

"확실히 대포가 어느 한편의 군주만 유리하도록 항구적인 힘의 불균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비용을 증대시켰고, 국가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확실히 기업가의 이익을 증대시켰다."

 

종이

"종이 또한 멀리 중국에서 발명되어 이슬람 국가들의 중개로 서구에까지 전해졌다. 제지용 물레방아가 처음 설치된 곳은 13세기의 스페인이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제지업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자리잡은 것은 14세기 초에 이탈리아로부터 비롯되었다."

 

"12세기부터 서구의 대학 안에서건 아니면 밖에서건 독자의 수가 부쩍 늘었다. 욕구가 강한 독자들 때문에 필경생들의 작업장이 늘어났고 정확한 필사본의 수가 늘어났다."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근대 수학이 느리게 진화한 것은 앞에서 말한 책들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출판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역사가들이 황금에 대한 갈망, 세계에 대한 갈망, 혹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실용적인 적용에 대한 추구가 늘 함께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

 

기술사의 무게>

"인간의 진보, 그리고 인구의 증가는 모두 농업의 변화를 따라가거나 적어도 거기에 동행했다."

 

"특히 18세기 이전에는 과학은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나 적용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외는 시계제조와 관련한 호이헨스의 발명(시계추, 용수철의 발명), 피에르 부게르의 선박론.

 

"진보를 막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실업의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몽테스키외는 이미 물레방아가 농업노동자의 일을 빼앗아갔다고 비난한 바 있다."

기업가의 비용문제. 실은 공장에서 직조는 수공으로. 

 

제 7장 화폐

"현찰화폐는 여러방식을 통해서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근대국가는 화폐의 주요 공급자였으며 이 변화의 수혜자였다. 그러나 유일한 수혜자는 아니었다. 이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많았다. 세금징수인, 염세 수취인, 담보대출 업자. 지주, 대상인 기업가, 금융업자 등이 그들이었다."

->오늘날은 그 화폐를 뛰어넘고 있다.

 

화폐가 부족하면 은행을 세워야 한다?

"크레딧을 만들어내는 기계, 기존의 화폐의 효과를 높이는 기계인 은행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제8장 도시

 "도시가 탄생한 것은 시골의 활동과 소위 도시적인 활동 사이의 분업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혁명적인 분업에서부터 유리한 것이 아니었던가?"

"모든 위대한 팽창의 시기는 도시의 팽창으로 표현된다."

"도시는 경제 팽창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팽창에 의해서 창출되는 것이다."

"도시가 도시로서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보다 열등한 생활을 하는 지역을 앞에 놓고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도시와 시골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떨어지는 법이 결코 없다."

"도시는 저급한 일들을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맡겼다."

"모든 도시는 무엇보다 우선 시장"

"일상의 삶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하루에 한 번 열리는 도시 시장들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는다."

"많은 사람들과 재화가 모여들지 않는 도시는 없다."

"모든 도시에는 외곽지역이 있다."

"대도시는 중소도시를 필요로 한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 도시는 그 근저에서는 같은 것."

"국가는 도시를 이긴 승자이면서도 도시의 제도와 심성의 계승자였으면 또 도시 없이는 지낼 수 없었다."

"16세기와 그 이후의 두 세기 동안 대도시들은 서유럽에서 발달했다."

 

"일본의 17세기는 오사카의 세기이며 "부르주아"의 세기"

 

"다른 사람들이 값을 치러주는 사치, 일부 선택된 사람들 곁에 수많은 하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그렇지만 선택된 사람들이든 하인들이든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대 집적이 만들어낸 집단 운명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대도시는 근대국가를 만들었고 근대국가는 대도시를 만들었다."

"사실 많은 인구가 살고 부분적으로 기생적인 성격을 가지는 도시들은 스스로 그렇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경제, 정치가 그렇게 되는 것을 허용하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 강제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결론>

"가장 발달한 경제에서도 물질생활의 먼 과거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ㅈ만, 아주 서서히 사라지며, 또 결코 똑같은 방식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