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미야베 미유키 [안녕의 의식] 8편의 판타지 단편소설

Livcha 2023. 4. 8. 13:46

[안녕의 의식] 책 표지

미야베 미유키의 [안녕의 의식]은 일본에서 2019년에 출간되었고 비채에서 2023년에 번역출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번역서 표지가 너무 시시하다. 

일본 하출출판사에서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의 [안녕의 의식] 책표지

일본판 책의 표지가 훨씬 낫다. 

[안녕의 의식]은 8편의 판타지 단편소설을 담은 것이니까 판타지 소설에 걸맞는 세련되고 현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디자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작가 이력

미야베 미유키는 내가 그녀의 모든 번역서를 다 읽을 정도로 '무척' 좋아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일본어를 잘 알았다면 일본어로 읽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안녕의 의식]에 담긴 단편소설들은 현재의 사회문제를 판타지 장르로 풀어낸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처럼 그녀의 글쓰기의 촘촘함은 다른 판타지 소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고심하고 연구해서 써내는지 알 수 있다.

<안녕의 의식>에 실린 8편의 단편 소설

'엄마의 법률'과 '성흔'은 가정내 아동학대 문제를, '전투원', '안녕의 의식', '바다신의 후예', '보안관의 내일'은 CCTV, 로봇, 복제인간 등 과학 발전과 관련한 현재 또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를 소재로 다룬다. 

사회문제를 판타지소설로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대단하다. 

'엄마의 법률'에서는 아동학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대받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거하고 새 부모를 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소설은 '도대체 부모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단지 낳았다고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담았다. 이미 이런 메시지는 새로울 것은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은 이미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바다. 다만 그 이야기를 '마더 법'이라는 가상의 법률과 시행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전투원'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CCTV에 대한 상상을 담았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코믹하기까지 하지만 블랙 코미디다. 우리 사회에 넘치는 CCTV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 공포심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나와 나'는 타임슬립 이야기다. 과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과거의 나가 이동해오는 이야기다. 과거의 나를 현재에서 대면한다면?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10대의 나가 어른이 된 나를 찾아와서 대화를 나눈다면 10대의 나는 어른이 된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 번 상상해 보았다. 10대의 나의 기대에 못미치는 어른일수는 있지만 어쩌면 미래의 나에 대해 조금은 안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0대의 내가 가진 불안 중 어떤 부분은 확실히 제거되었으니까. 내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안녕의 의식'은 '군중 속 고독'의 문제를 다룬다. 긴 시간 함께 해온 로봇을 마치 마음을 가진 존재처럼 애착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과 사람이면서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 같은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나온다. 이 이야기 속 '나'는 애정을 받고 있는 로봇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감정은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이 반려동물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닮아 보인다. 사랑받는 개나 고양이가 되고 싶을 정도로  인간관계 속에서 소외된 고독한 사람이 분명 존재하리라. 

'별에 소원을'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정서적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들려준다.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꿈의 형태를 빌었다. 진지한 문제를 꿈과 외계인 소재를 써서 풀어낸 작가는 역시나 대단하다.

'바다신의 후예'는 시신에게 의식을 주어 되살린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의 변주라고나 할까. 죽은자를 살려내서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에 이용한다는 상상. 

'성흔'은 아동학대 가정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학대받은 아동의 마음은 끝내 회복될 수 없다고 작가는 생각하나 보다. 아마도 작가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아동학대는 없어져야 하는 사회문제라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여론을 형성하는 SNS공간과 메시아의 소재를 이용했다.

'보안관의 내일'은 8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흥미로왔다. 끔찍한 범죄자가 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사회환경의 영향 때문에 범죄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우주 공간에 조성한 인위적 환경 속에 그 아들을 계속해서 되살려내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이야기다. 복제인간, 장기를 인위적으로 교체한 인간, 인공지능으로 죽은 사람의 인격모듈을 담은 의체인간 등에 대한 다양한 미래적 상상이 담겼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게임을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재미있었고 작가의 다른 판타지 소설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