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자연

[식물의 세계사] 잡초를 위한 변호

Livcha 2023. 10. 12. 11:29

[식물의 세계사]책 표지

'식물 세계사'라니? 도대체 뭘까?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빌렸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책이 왜 식물 세계사인지 궁금할 지경. 
그래서 원제를 살펴보니까 'Weeds'. 잡초들...
항상 그렇듯, 원제는 책 내용을 잘 드러내준다. 
하지만 우리 번역서는 이 책처럼 어이없는 제목을 달곤 한다. 
책 판매에 대한 욕망이 이런 식의 제목을 달게 하는 것. 

작가, 번역자 이력

저자 리처드 메이비는 자연작가이자 저널리스트란다. 
그래서인지 책은 읽기 쉬운 편이다.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탐나는 책]애서 2022년에 번역출간했다. 

1장 인간의 스토커인가, 동반자인가?

 
-풀이 우리가 가진 계획이나 세상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지도에 방해가 되면 그것은 잡초가 된다. 
-잡초는 '부적절한 장소에서 자라는 식물'로 정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당신이 다른 풀이 자라기를 바라는 곳, 또는 어떤 풀도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곳에 존재하는 식물이다.
-그(랄프 왈도 에머슨)는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잡초는 부적절한 곳에 자라는 식물일 뿐 아니라 어쩌다 잘못된 문화로 들어오게 된 식물이기도 하다.
-잡초는 인간의 계획을 방해하는 식물이다. 그것들은 농작물의 영양분을 빼앗고 정원 설계자들이 섬세하게 계획한 풍경을 망치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르지 않으며, 불쾌하게도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도시의 쓸모없는 사람들의 은신처가 된다. 
(불현듯, 프랑스 렌에서 지낼 때 우리 아파트 정원 한 귀퉁이에 타임, 개양귀비 등을 심어두었더니 정원사 아저씨가 개양귀비만 제거했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정원사 아저씨의 정원계획에 개양귀비는 포함될 수 없는 잡초였던 듯.)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처럼 잡초도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와 잡초의 오래된 애증 관계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생태학적 체계에서 어느 부분에 속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잡초는 딱 봐도 변화가 심한 땅과 훼손된 풍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했으며, 우리 생각보다는 덜 유해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시의 하천가에는 족제비싸리, 노랑꽃창포 등이 자라는데, 이 식물들은 모두 황폐한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 심는 식물이다. 노랑꽃창포
-1964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국은 베트남에 에이전트 오렌지 1천2백만 톤을 살포했다. (...) 에이전트 오렌지로 인해 많은 수의 베트남 사람들이 사망했고, 지금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처사였다. 40년이 지나도록 숲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가 사라진 빈자리는 띠라는 억센 풀이 차지했다.
띠는 동남아시아 산림의 지피색생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베트남에서 나무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리자 띠가 온 사방에서 미친듯이 자라났다. 
-20세기초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잡초들이 사실상 세계화되었다. 예를 들어 친숙한 영국토착종인 고사리와 별꽃, 마디풀, 소리쟁이, 쐐기풀, 메꽃은 이제 다섯 개 대륙에서 모두 자라고 있다. 
(우리 하천가에도 소리쟁이, 메꽃은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잡초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다. (작가는 '잡초를 향한 공평한 시선'을 말한다)
-경작의 시작은 아마 자연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관념이 형성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자연계는 서로 다른 2개의 진영으로 나위었다. 인간의 이익을 담아내고 유지하고 그것을 위해 증식한 그런 유기체들과 자기 자신의 영역, 즉 자기 방식대로 살면서 계속 '야생성'을 유지한 그런 유기체들 말이다.
잡초는 이렇게 깔끔한 구분이 깨진 경우에 발생한다. 야생이 우리의 문명화된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길들여진 동물이나 식물들이 달아나 빠르게 퍼지는 경우를 말한다. 
 

2.초대받지 않은 문명의 침입자들

-그곳(홀리 랜드, 현재 예루살렘 일대)에서 개양귀비들은 신약에 나오는 '들판의 꽃들'의 원형이었다(지중해는 수많은 경작가능한 잡초들의 원산지로 이 지역의 길고 건조한 여름에는 그 무엇으로도 덮이지 않은 건조한 작은 땅들이 생겨난다. 거기서 한해살이 잡초들이 씨를 맺고 번성한다.) 
-눈이 오는 지대와 아주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숲 사잉의 거친 경계지는 또 하나의 순수한 자연산 잡초를 키우는 보육원이다.
-휴면은 일종의 보험정책이다. 그ㅓ니까 궂은 날을 대비해 데어놓은 식물의 저축 같은 것이다. 파란만장한 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한 식물 종이라면, 생존을 도와줄 적응 습성 중 하나가 일정 비율의 씨앗을 2년, 3년, 30년, 300년 동안 발아하지 못하게 한다.
 

3. 자연을 정복한 인간 & 문명을 정복한 식물

 
-하느님은 도움이 되는 많은 동물과 먹을 수 있는 많은 생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채식주의 생활방식을 고집한 것 같다.
'하느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적어도 불만을 품은 아시리아인들에게 농사일은 벌이나 독이 든 성찬이지, 분명히 수렵 채집인들의 자유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일 만큼 실제 잡초와 은유적 잡초에 의해 충분히 저주받은 것으로 보였다.
-현대 이라크 마을 사람들은 작은 산에서 야생 식물들을 채취하는데, 당아욱 종이 수프와 스튜에 사용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식 샐러드는 현대 영국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거기에는 물냉이와 돌소리쟁이, 민들레가 들어간다. 그리고 밤과 아몬드, 무화과, 올리브와 같은 야생 열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많이 들어가는 재료이다.
 

4. 독초인가, 약초인가?

 
-신앙심이 깊은 중세인들이 잡초에 가한 최악의 행위는 그들을 나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나라마다 악마의 식물로 규정하는 꼬리표가 달린 품종이 적어도 20여종이 넘는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식물로 '악마의 나팔꽃'이 있다. 이 이름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은 식물 다투라. 그래서 난 이 꽃을 '달꽃'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인가!)
-새삼은 완전히 기생적일 뿐만 아니라 뿌리 없이도 꽤 많이 존재하는 놀라운 식물 집단이다. 그들은 백리향이나 콩과 식물을 먹이로 삼으며, 중세에는 특히 아마를 먹이로 했다. 어쩌면 새삼은 작물을 몽땅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 동네 하천에서도 종종 새삼을 만나게 된다. 새삼의 줄기는 붉은 색이나 노란 색이라고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보는 새삼은 노란 줄기를 하고 있다. 그물처럼 식물들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 마치 '너희는 포획되었다'하고 선언하는 듯하다.)
 
 5. 주술과 의학의 경계에서

 
-물로 17세기에는 놀랄 일이 아니긴 하지만 약징주의의 비타협적인 인간 중심성은 주목할 만하다. 그 지지자들은 식물에 그러한 모양과 색깔을 갖게 된 소위 자신마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민들레꽃이 노란색인 것은 수분 매개 곤충을 유혹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그 잡초가 배뇨장애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우엉 씨앗의 갈고리는 씨앗이 수월하게 이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사에 물렸을 때 독을 빼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호두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서명된 식물의 전형이었다. 호두 껍데기의 모양은 호두를 완벽하게 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뇌와 하나님이 거기에 심으신 지혜를 상기시키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과학적 사고에 장애물이 분명하다.)
 

6.문학이 사랑한 식물들

 
-이 풀은 중세 시대 프랑스에서 명상하는 듯한 '얼굴'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팡시pensée로 알려지다 나중에 영어식으로 '팬지(pansy)'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 교구 주민들은 훨씬 덜 지적인 관심을 갖고서 얼굴이 도 개 있는 것으로 그 꽃을 보았다. 그것은 옆에 달린 꽃이핑 위쪽 꽃잎이 만들어준 덮개 안에서 입술과 입술을 포개고 키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팬지를 보면서 생각하는 사람이나 키스하는 사람들을 연상하다니! 아무리 보아도 팬지를 그렇게 생각하긴 어려운 듯.)
 

7. 잡초의 히치하이킹

 
-유럽 제국주의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들은 식민지 열강들이 자신의 경제적 우선순위를 외국 문화에 강요하는 데 사용한 돌격대였다. 18세기와 19세기 역사학자 앨프레드 W. 크로스비 '생태제국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핵심은 전통적인 자급자족 농업을 고무나 빵나무, 아편, 사이잘초와 같은 수출용 품종, 그리고 나중에는 온실이나 정원 가장자리를 장식할 이국적인 품종을 위한 수익성 외래 식물 플랜테이션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앗! 책꽂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책 잊어지고 있던 책, <생태제국주의>.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생겼다.)
 

8. 식물의 미학

-이제는 익숙한 모순어법인 '야생 정원'이라는 말을 만들고, 처음으로 잡초의 야생적 아름다움이 우리의 '바깥에 있는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윌리엄 로빈슨 (William Robinson)이라는 아일랜드 정원사였다. 19세기 말의 원예에 있어 이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러스킨의 추상적이고 고정된 미학과는 대조적으로 로빈슨의 미학은 자연성은 하나의 과정이며, 정돈되어 있거나 예측 가능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신념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가장 최고의 차원에서 식물의 아읆다움을 구성하는 불가사의와 불확정성'에 감탄했다.
 -윌리엄 로빈슨의 '야생정원 가꾸기'는 이런 외래 식물들의 확산에 영향을 준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외에서 온 잡초를 정원 식물로 사용하고, 그런 다음 당연히 그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재식양식을 옹호하면서 잡초 지역과 경작지라는 무대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강조했다. 식물들은 물리적으로뿐 아니라 개념적으로 그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우리 시가 해외에서 온 잡초로 하천변을 정원화하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이 외래종 식물들은 그 경계를 뛰어넘어 하천변 곳곳을 점령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앞서 심었던 외래종은 하천변 곳곳을 제 터로 삼고 있다.)
 

9.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선 마녀

 
-정원에는 식물학적 연속성이 별로 없다. 새로 온 주인들의 취향은 더 현대적이다. 화단이 다시 설계되고, 식물이 교체된다. 식물들은 인기를 얻거나 잃고 최신 유행하는 식물들이 멀리 지구 한구석에서 들어온다.
-가장 길고 불가사의한 이름-Welcome-home-husband-though-never-so-drunk
 (이토록 길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식물을 찾아보았는데, 이미 본 적이 있는 식물이었다. 벼락을 막기 위해 초가지붕에 심었다는 식물이라니!)
-아주 오래 전에 지중해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약간 보기 흉한 노란 꽃이 피는 이 잡초(Greater celandine)는 식물의 문화적 연결이라는 미로의 세계를 내게 알려준 품종이다. 
(애기똥풀 노란 꽃이 흉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에 동의할 수 없다.)
-'셀런다인Celandine'은 그리스어로 '제비'를 뜻하는 켈리돈khelidon에서 왔으며, 켈리도니움 마쥬스Chelidonium majus는 제비들이 돌아오는 시기에 꽃이 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것 같다. 
-소리쟁이를 먹고 사는 나방목록: bearded chestnut, black rustic, blood-vein, browun-spot pinion, chestnut, common marbled carpet, cream wave, dark-barred twin-spot carpet, dark chestnut, feathered ranunculus, garden tiger, gem, green arches, grey chi, isle of wight wave, large ranunculus, large twin-spot carpet, lewes wave, mottled beauty, muslin moth, nutmeg, pale pinion, portland ribbon wave, red sword-grass, riband wave, ruby tiger, satin wave, striped hawk-moth, sword-grass, twin-spot carpet, whitemarked, wood tiger, wellow shell.
(개인적으로 소리쟁이라는 잡초를 좋아하는 데, 무척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된장국에 넣어서 먹으면 맛이 좋다고도 하는데, 아직 먹어보진 못했다. 아욱과 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상상해보곤 한다. 아무튼 우리 하천가에서 소리쟁이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소리쟁이가 생산해내는 씨앗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많은 소리쟁이들이 벌레들의 먹이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종종 확인하게 되는데,이토록 많은 나방의 먹이가 되어준다니 정말 나방들에게는 무척 소중한 먹을거리가 아닐 수 없겠다.)
 

10. 포화와 폐허 속에서 피어나다

 
-맥크래가 자신이 지휘하고 있던 볼로뉴 연합 병원에서 폐렴으로 죽은 지 10개월 후인 1918년 11월, 마이클의 지인 한 사람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돌아온 피난민을 돕기 위해 프랑스에서 천으로 된 양귀비를 제작해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1921년 영국 재향군인회가 조직되자 그녀는 자신의 양귀비 프로젝트를 채택해 달라고 그들을 설득했고 군인회는 그해 11월 첫 휴전 기념일에 프랑스에서 만든 양귀비꽃을 사용했다. 그것으로 10만 6천 파운드가 모금되자 군인회는 즉시 생산지를 영국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양귀비꽃을 옷에 단다. 
(어느 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갔을 때 마침 종전기념일이었다. 곳곳에서 가짜 양귀비 꽃이 넘쳐 났다. 그때만 해도 왜 이 꽃의 내력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정확히 그 유래를 알게 되서 좋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은 양귀비도 번성케 했지만 이 전쟁의 상징적인 잡초는 분홍바늘꽃이었다. 그것은 런던 대공습 후 매해 여름마다 영국 대도시의 피폭지에 보라색 파도처럼 펼쳐졌다. 이전에 그 식물을 본 적이 없었던 대부분의 런던 사람들은 그 꽃에 '폭탄 잡초bombweed'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폭탄잡초를 우리 시에서는 올해 하천가에 폭탄을 퍼붓듯 잔뜩 심어두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토끼풀, 개망초 등 다양한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폭탄잡초는 원래 살던 풀들에게는 폭탄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지금도 왜 그 식물을 그토록 잔뜩 넓은 땅에 심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초기의, 그러니까 대체로 18세기에 기록된 것들은 모두 분홍바늘꽃을 고지의 바위나 그늘진 숲에서 자라는 희귀한 식물로 묘사하고 있다. 노섬벌랜드의 첫번째 기록은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셰윙셀' 서쪽편 로만 월 아래 바위와 덤불 사이와 크랙 호수 옆, 나스데의 슬레기포드 옆 타인 강 남쪽 제방위에 아주 많았다. (...) 그것은 프랑스 버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정원 중일부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땅 위로 뻗어가면서 뿌리를 내리는 거대한 줄기 때문에 경작지보다는 바위틈 사이의 좁은 환경에서 더 잘 자란다. 그것은 희귀식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야생에서 있을 때와 재배지에 있을 때 분홍 바늘꽃이 매우 달리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11.음모론의 악역이 된 식물

 

-날개 달린 씨앗들은 보도의 틈과 지하철 터널에 박히게 될 것이다. 천국 같은 특성(꽃에서 나는 냄새는 다소 유쾌하지 않다) 때문이 아니라 어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급속히 자라는 속도를 가리켜 천국의 나무tree-of-heaven라고 불리게 된 이 나무들은 싹이 트면 급속히 성장한다. 몇달 후, 펼쳐진 잎이 무리지어 보도 배수구를 뚫고 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뿌리체계는 보도 석판을 들어 올리며 개방 하수를 갈라지게 할 것이다. 

이 나무들이라면 10년 이내에 9미터 넘게 자랄 수 있다. 그리고 보도 밑에 오랫동안 깔려 있던 흙이 태양과 비, 하수 오물의 영양소에 노출되면서 지면 근처에서 자라던 잡초가 그 안으로 뛰어들어 싹이 트는 어린나무 밑에서 하층 식물이 될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가죽나무는 많다. 큰 가죽나무 주변을 보면 어린 가죽나무들이 줄줄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시처럼 척박한 곳에서는 가죽나무는 반가운 나무일 수도 있다. 나는 우리동네 물펌프장 곁에서 자라는 가죽나무를 항상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아름다운 나무라는 생각이다.)

 

-으로 뒤덮힌 풍경은 섬뜩하게 아름답다. 그것이 파묻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거기에는 마치 고대 도시가 밀림의 습지에 압도당한 것 같은 원시적인 기운이 감돈다. 나무들은 녹색 용암이나 단색 산호층에 의해 돌같이 굳은 것처럼 보이거나 해초로 둘러싸인 난파선의 유물처럼 보인다. 어떤 미국인들은 이 활력 넘치는 푸르름에서 위안을 찾았다. 

(우리 동네 하천가에서는 한삼덩굴, 가시박이 칡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난리로 쓰러진 나무들이 떠나간 황폐해진 물가를 한삼덩굴과 가시박이 뒤덮었다. 그 성장속도가 너무 빠르고 위세등등해서 무서울 지경이지만 물가의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 고마울 지경이다. 게다가 멀리서 하천을 내려다보면 이 덩굴식물들 덕분에 온통 푸르름이 그득하다.)

-남부에서는 이 엄청나게 널리 확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토양 유실을 제어하는 데 사용하고 있고 그 줄기를 수확해 바구니를 짠다. 그리고 칡을 심은 원래 목적인 주기적 방목이 칡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가장 경제적인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외래종들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 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사용한 독특한 방법 때문이기도 하고, 식물 세계의 적절한 질서를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 말하자면 완전한 기회주의적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비어 있는 것에 대한 자연의 그 이름난 혐오 속에서 매우 별나거나 역사적으로 어울리는 잡초들이 쓸 수 있는 공간들을 되는대로 채우는 그 방식이 너무 좋았다. 

-외래 식물들은 우리의 국가 및 지역의 문화, 때로는 지역 생태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에 훨씬 더 큰 기여를 해야 하맂도 모른다. 기후 변화는 토종 식물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한다. 그들은 전통적인 범위, 즉 안전지대를 벗어나 식물 게토로 내몰리거나 심지어 지역에서 소멸될 수도 있다. 그들은 새로운 조건에 더 적합한 식물로만 채울 수 있는 식물 공백을 남겨둘 것이다. 이중 어떤 것은 따뜻한 남쪽에서 온 식물일 수도 있다. 단지 그들이 조상 대대로 이곳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물리치는 것은 우리 작은 군도의 식물군이 점점 더 빈곤해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황폐해진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식물들은 외래종 식물들이었다. 예를 들어 노랑꽃창포. 지금도 도시 곳곳은 외래 식물들로 가득하다. 도시의 행정가들은 토종이냐 외래종이냐를 구분하지 않고 보기 좋고 잘 자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있나 보다. 토종식물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외래식물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황폐해진 곳을 채워주니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12.멸종이냐, 타협이냐?

 

-잡초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가장 극적으로 변한 곳은 도시 지역이다. 버려진 산업현자오가 철도의 대피선, 매우 황폐한 주택 단지 주변에는 외래 침입종들에 의해 파괴될 생산적인 식량 지대나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장소들은 황무지 또는 정치인과 개발자들이 고의적으로 만든 경멸적 표현이 '재개발 고업단지'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러한 곳들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생물학적으로 풍부한 구역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오명이다. 

그러한 곳들은 또한 서로 경쟁하는 토종 식물 종이 없는 구역으로 진정한 도시 생태계의 진화, 즉 이 지구에는 새롭지만 전세계인이 모여 사는 건물로 들어찬 도시 지역에 전적으로 적합한 식물 군집을 목격하고 있다.

-잡초의 재빠르고 기회주의적인 생활방식은 그들의 역할, 즉 그들이 하는 일이 땅의 빈 공간을 베우고, 산사태나 홍수, 산불로 인해 수백만 년 동안 자연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린, 그리고 오늘날에는 공격적인 농업과 엄청난 오염으로 퇴화된 초목을 치유하는 것이라는 사시릉 ㄹ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토양을 안정시키고, 물의 손실으 ㄹ막으며, 다른 식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더 복잡하고 안정적인 식물체계의 전이 과정을 시작한다.

-(...)잡초가 끼치는 모든 민폐는 무분별하고 때로는 의도적인 자연계 파괴의 결과였다. 잡초는 우리가 재배한 가장 성공적인 작물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 가지고 있는 토종식물에 대한 강력한 옹호와 외래식물에 대한 혐오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서 좋았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얼마나 자연 파괴적인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외래식물에 대해 좀더 관대한 시선을 갖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외래식물이 우리 공간에 들어온 것은 우리가 자연을 파괴한 결과일 뿐, 외래식물은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애쓸 따름이다. 외래식물의 침입도 우리 인간의 도시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해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시선을 가질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