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감성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한 집 안의 퀴어 공동체

Livcha 2023. 7. 28. 11:44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는 공동체의 삶, 퀴어들의 공동체의 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오월의 봄에서 2022년에 출간되었다. 

기획자는 '가족구성권연구소'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적 대안을 찾고 있다니 훌륭하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이성애중심의 혈연 핵가족은 우리 사회가 가족의 합법적이고 전형적 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좀더 현실을 들여다 보면 함께 일상을 꾸려나가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당장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이혼후 재구성된 가정은 흔히 볼 수 있는 가족형태다. 

게다가 홀로 살아가는 1인 가정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1인세대가 모여 이루는 가족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동성애 커플의 경우다. 

무지개집도 1인 세대인 15명이 모여서 사는 공간으로 시작했다. 법적으로 이들은 커플로 공동체로 살아가지만 법적으로 그냥 원자적인 1인 세대의 모임뿐이다.   

무지개집은 현실적으로 세대나 가정으로 존재하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족구성권이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2인 이상의 공동체나 동성커플의 가족은 가족의 법테두리 밖에 존재하기에 가족이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가족구성권과 주거권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노트>

들어가며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은 지금도 많은 성소수자가 살고 있고 여러 인권/시민/사회단 체 또한 자리잡고 있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지역이지만 최근 '망리단길'로 상업지구가 개발되고 브랜드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집세가 올랐다. 이에 따라 많은 세입자 성소수자는 서울시 은평구나 경기도 고양시로 이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협동조합으로 존재방식을 결정한 무지개집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참조점 또한 제공된다

-무지개집은 이성애중심적인 기존의 가족제도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상상되는 장소로서의 집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집과 대비되는 임시적이고 고립된 장소로서의 집도 아니다. 무지개집은 안전, 정체성과 친밀성 실천, 공동체, 비혈연 돌봄망의 공간으로서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성소수자들의 대안적 주거공간이다. 

 

3. 서로의 집이 되는 사람들

-오김은 협동조합 주택에서 사적 공간은 최소화하고 공용면적을 최대한 늘려야 공동체 주택의 이점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공용공간을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지개집에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공용공간까지 자기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무지개집이 넓다. 하지만 자기 집만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집이 너무 좁을 수 있다.

 

4. 무지개집이라서 다행이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백퍀) 집이라는 말처럼 무지개집의 일상을 잘 드러내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비가 새고, 어느 날은 누구의 생일이고, 어느 날은 누군가가 아프고, 또 어느 날은 화가 난 누군가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

 

5. 담장을 넘어볼까?

-'젋은 애들=1인 가구=뜨내기들'이라는 통상적인 인식은 '동네주민'이라는 말이 환기하는 '평범한' 가족 이미지의 대척점에 있다. 무지개집의 무대가 동네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그곳은 반감도 환대도 조화도 분리도 잘 느껴지지 않는, 반응이 유보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지역성을 만들고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6. 소속과 자유, 그리고 주거 안정

-이 연구보고서(<성소수자 주거 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를 읽으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대략적인 주거상황과 주거경험이 그려진다. 이 보고서는 첫째, 성소수자가 평균 연령대 대비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고 보고한다. 성소수자의 경우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에 비해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제도적으로 파트너와 혼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주거정책에서 제외된다는 점, 그리고 이와 연관되어 1인 가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추측된다. 둘째로, 보고서는 성소수자가 주거비용 대비 주거환경 또한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고한다. 응답자의 많은 수가 15평 미만의 집에서 월세 50만원 미만을 내며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의 지하와 옥탑방 거주 비율은 전국 일반 가구 대비 약 6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과 같은 시스젠더로 규정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젠더 퀴어의 경우 주거상황이 훨씬 열악하다는 점이 나타난 것이다. 

-성소수자의 주거불안이 소득과 일자리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혈연가족과 이웃 등의 통제와 차별로 인해 발생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증폭된다는 것이다. 

-안전감의 시작점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체성과 일상에 대한 온전한 인정이다. 이것이 결여된 채 추구되는 안전은 무언가를 조심하거나 어떤 행동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크며 또한 누군가에게 보호와 감시를 위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안전한 집이란 누군가의 보호나 물리적인 장치로 확보될 수 없으며, 집의 구성원들이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는가, 이 공간이 나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느낌을 주는가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신혼부부, 청년층을 중심으로 주거복지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신혼부부 자격을 갖지 못하는 성소수자나 비혼자를 차별한다. 

-무지개집경제적 지원, 가사제공, 병간호 수행, 일상적으로 고민을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정서적 지원 등으로 이뤄지는 가족 실천이 그 어떤 집보다 활발하고 일상적으로, 또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는 집이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연령대의 퀴어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조금씩 앞서 살았던 세대의 고민과 경험을 전해 듣기도 하고, 현재의 사회적 실재를 고스란히 직접 보고 듣고, 현실을 함께 공유하면서 차이를 가진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확인한다.

-혼자살기함께 살기를 한꺼번에 제시하는 공동주택으로서 다양한 세대가 살아가는 무지개집은 사회적 벽에 갇혀 고립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퀴어에게 삶의 장소를 공동체로 확장하고, 특정하게 구획된 시간대에 분절되어 나타나거나 보이지 않았던 삶을 연속적인 시간성의 맥락으로 펼쳐내는 주거방안이다. 

-현재의 무지개집에서 서로 나누고 경험하는 돌봄과 관계는 "오랫동안 무지개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바람은 실제로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서로가 어떻게 돌봄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무지개집이 함께한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주택협동조합이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는 방식인데, 이 외에도 주택협동조합에는 조합원 개인이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는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민간이 임차하여 운영하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공공이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는 이웃기웃주거협동조합 등이 있다. 

-평당 가격을 매기는 게 아니라 해당 입주자의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여 적절한 비용을 합의하고 조율하는 방식을 선택한 건 무지개집이 가장 무지개집답게 지속 가능성을 찾아가는 방법이었다.

나가며

-무지개집은 무엇보다도 '누구와 함께 살고 싶습니까?'를 먼저 묻는 집이다. '함께 살아가봄 직한 사람들'을 향한 관계적 소망을 주거를 통해 현실화한 곳이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원시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주변 선배들 가운데는 실제로 공동체 삶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가던 사람들도 있었다. 선배들이 고민하는 공동체는 여러 이성애핵가족이 모여서 함께 또 따로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그 사람들이 이후 이 꿈을 실현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통하는 따뜻한 공간으로서의 주거에 대한 꿈은 비단 퀴어들만의 소망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벽장 안에서 살아가기 쉬운 퀴어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이성애자들보다는 더 필요할 수는 있다. 지금껏 나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에서 살아왔지만 그 어떤 주거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절은 프랑스의 신학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던 때였던 것 같다. 그 기숙사에는 다양한 연령, 다양한 국적,  다양한 종교의 1인 세대뿐만 아니라 커플이 함께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직업인도 있고 학생도 있었다. 1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사적인 공간이 있으면서도 부엌, 세탁 등은 공유공간으로 이용했다. 독립성이 지켜지면서도 언제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마음이 맞으면 함께 춤도 추러가고 콘서트도 가고 여행도 갔다. 거기다 다양한 파티도 더해졌다.  그곳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는데,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행복감에 젖는다. 물론 당시 함께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 퀴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보수적인 국가이기도 해서 퀴어들이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가진 사람들까지 함께 솔직하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면 그 시절은 더 이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지개집은 15명이 함께 너무 가까이 부대낀다는 느낌을 준다. 거기에 비해 내가 살았던 기숙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좀더 독립적이면서도 친밀했던 것 같다. 나는 인간 개개인이 무척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숨기고 싶을 때는 마음껏 숨길 수 있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을 때는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무지개집 같은 집이라면 좀 갑갑할 것도 같다. 하지만 자신을 쉬이 드러낼 수 없는 퀴어들에게는 필요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일 것도 같다.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바바야가집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이든 여성들과 젊은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가 무척 흥미로왔다. 물론 이 실험은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적당한 규모의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가지면서도 어려울 때는 그 거리를 좁히면서 가까와지는 그런 집을 꿈꾼다. 물론 지금은 그런 공동체가 과연 가능할지 회의적이지만 여전히 꿈은 꾼다. 무지개집이 내 꿈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