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괴담] 유령 이야기

Livcha 2023. 7. 30. 09:48

[괴담] 책표지

올여름 도서관 북큐레이션 주제는 '공포소설'.

전시된 책 가운데 '괴담'이라는 제목 때문에 고이케 마리코의 [괴담]을 손에 들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방바닥 돗자리 위에서 뒹굴거리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

도서관 사서가 주제를 공포소설이라고 정한 이유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을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번이 처음. 

미야베 미유키 정도의 필력이 돋보이지는 않는 것 같는다. 

다른 책은 어떠려나...

7편의 단편을 모은 이 책은 소재가 모두 '유령'. 

죽음에 관한 저자의 관심에서 이 이야기들을 지었다고 한다. 

타인의 죽음,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주는 고통은 유령이 되어서라도 죽은 존재가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일까?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단순히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유령을 다루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유령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듯하다. 그래서 다른 유령 이야기들과는 차이가 난다. 

 

자신을 대신할 젊은 여성을 어머니에게 인도하는  딸 유령(카디건), 홀로 사는 80대 할머니의 집 안에 머무는 아이 유령과 그 아이의 어머니 유령(동거인), 자신을 사랑했다 자살한 남자가 머물던 팬션에서 만난 남자 유령(곶으로), 결혼한 친구집을 찾아 손님방에 머물다 만난 친구의 전남편 유령(손님방), 병실에 같이 입원해 있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할머니 남동생 유령(돌아오다), 아내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남자 앞에 나타난 아내의 유령(칠흑의 밤), 공원에서 홀로 있는 노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젊은 여자유령(행복의 집).

 

'카디건'은 딸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칠흑의 밤'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남편이 나온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 마음을 담은 이야기다.

'곶으로'에서는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화답할 수 없었던 여인의 죄책감, '손님방'에서는 자신을 사랑했던 전남편이 죽은 후 그 남편의 동생과 재혼한 여인의 죄책감, '돌아오다'에서는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누나의 죄책감을 담았다.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 역시 강렬한 감정이다. 가까운 사람이 죽은 후 겪는 여러 단계의 감정 가운데 죄책감을 빼놓을 수 없다. 

'동거인'과 '행복의 집'은 유령이라도 곁에 두고 싶을 만큼의 노인의 고독감을 그려냈다. 또 '행복의 집'의 젊은 여자 유령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살해당한 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승에 머문다.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진실을 인정할 때 유령은 이승을 떠날 수 있다. 

 

게다가 유령 역시나 죽은 이후지만 감정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작가의 생각.

'손님방'의 남편 유령이 갖는 질투심, '곶으로'의 젊은 남자의 분노, '카디건'의 딸 유령의 남은 어머니에 대한 염려, '행복의 집'의 살해당한 여인 유령의 트라우마. 

 

"(...)죽어서 땅에 묻혀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우리에게는 분명 이 세상이 보일 것 같고 소리가 들릴 것 같고 뭔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일들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돌아오다' 중에서)

 

결국 유령 이야기는 죽음과 연관된 강렬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다.

견디기 힘든 그 감정은 유령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유령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