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감성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Livcha 2023. 9. 22. 10:22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책표지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도서 코너를 살펴보니까, 이 책이 꽂혀 있었다. '당신의 성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 속의 트랜스젠더 혐오를 발견한 이후, 내 속의 혐오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 트랜스젠더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대개 혐오는 잘 알지 못하고 낯설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서적이나 영상물은 눈에 띠면 읽거나 보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개인적으로 만나 본 트랜스젠더들은 모두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었음에도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로 통칭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런 모순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현재의 나는 트랜스젠더의 혐오감을 걷어낸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처지가 마음 아팠다. 이들은 분명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이토록 가혹해도 되는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오월의 봄, 2023)]는 민나리, 김주연, 최훈진 세 명의 기자가 썼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취재하고 기획기사로 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알려주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업을 지속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당하거나 내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나이에 해야 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정 속에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노동착취의 현장으로 내몰리면서 이른 자립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이지만, 트랜스젠더는 오늘날 상당히 넓은 범주의 성정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다. 기존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로 성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트랜스젠더로 명명된다. 그래서 남성적 신체와 여성적 신체를 얻기 위해 의료적 처지를 받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의료적 처지를 받지 않지만 자신을 남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면 남녀 양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트랜스젠더의 범주에 속한다. 기존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성정체성을 '논바이너리'라고 명명한다. 성정체성의 용어가 오늘날 상당히 분화되서 대개의 사람들은 그 용어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토록 용어가 세분화되는 것은 그 만큼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사회가 성별 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에 개개인을 억지로 가두는 것이 문제로 여겨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증에 성별을 구분해서 번호화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사회 속에서 외모, 옷차림, 성역할 등에서 기존의 구획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들어갈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성별 이분법나 이성애, 성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사회적 틀에 자신을 욱여넣을 수 없는 사람을 다수의 사람들이 제도적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왜 그토록 성별을 이분화하는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볼 때도 우리 인간은 완전한 이분화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분화는 다수자에 맞춘 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성애 역시도 생물학적으로 볼 때 번식 차원에서 필요로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번식을 위해서만 성관계를 하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성관계를 원치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게다가 생식능력이 애초에 없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성역할에 대해서 말하자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이 하는 일을 해낼 수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굳이 성역할을 나누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좀더 잘 하는 일과 좀더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뿐이고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 자유롭고 더 나아진다면, 성별이분법, 이성애, 성역할 구분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는 굳이 성정체성의 다양한 용어를 정의하려고 애쓰지도 않을 듯 싶다.  내가 편하게 여기는 모습대로 살아가면 그 뿐일테니까. 

 

<참고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책으로 <논바이너리 마더>, <별 것도 아닌데 예뻐서>, 영화로는 <걸>, <트랜스 아메리카>, <천하장사 마돈나>, 다큐로는 <스케이트 보드 위의 삶>, <너에게로 가는 길>, <3XFTM>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