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 팔십대 어머니의 우여곡절 인생사를 만화로 담다

Livcha 2021. 7. 28. 11:22

1.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는 막내딸인 김은성이 80대 어머니의 이야기를 8년동안 곁에서 듣고 그린 만화책이다.

김은성의 어머니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당신의 부모, 형제자매, 친척, 동네 사람, 친구, 삶 속에서 만난 여러 인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냈다. 그리고 김은성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체에 걸러 만화라는 장르로 담았다. 

김은성 어머니의 이야기는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되었을테고, 또 딸의 관점에서 또 다시 정리되었다. 두 번의 정리과정을 끝낸 이야기는 만화라는 장르를 취한 4권의 책으로 묶어졌다. 구술사를 만화로 풀었다는 점에 내 관심을 끌었다.

김은성 작가만의 독특한 만화체는 어머니 이야기에 정서와 힘을 실어준다.

마치 판화같은 흑백의 그림이 인물들과 풍경을 단순화시켜 담아냈지만 단순함 가운데 작가가 잡아낸 인물의 표정과 배경은 만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한 할머니가 주저리주저리 읊어낸 이야기가 뭐 그리 흥미로울까 싶지만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데는 작가의 독특한 만화체가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본다.   

 

2. 그리고 책이 담은 시대는 20세기초부터 21세기초까지다. 일본 식민시대 직전부터 일본 식민시대, 해방, 6.25전쟁, 한국전쟁 동안의 탈북, 거제도 포로수용소, 탈북자의 남한 정착, 서울 상경, 강남의 부동산 폭등, 80년대 반독재투쟁...

변화무쌍한 한국 현대사가 한 평범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그리고 그 현대사의 무게는 여성에게 너무 무겁다. 그래서 이 책은 한 개인이, 한 여성이 급변하는 한국상황을 관통해 살아남은 생존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나는 내내 나의 조부모, 외조부모, 부모, 친척들이 차례로 떠올랐고 그들이 내게 남긴 개인사들의 곡절이 살아서 머릿 속에서 꿈틀거렸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김은성 작가 못지 않는, 시대를 관통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내 경우는 이미 조부모도 외조부모도 부모도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김은성 작가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것처럼 직접 들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김은성 작가가 부럽기도 하다. 

 

3. 만화책은 뒤로 갈수록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늘어난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를 얻게 된다. 이미 40대에 들어선 작가는 어머니 속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 보다가 점차 자신의 청소년기, 청년기를 파고들게 된다. 어머니의 구술담이 작가로 하여금 자기 개인사의 성찰로 이끈 것이다. 어머니를 이야기를 듣던 과정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치유하는 과정으로 이어진 것은 작가에게도 값진 기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4. 책을 덮으면서 지금 현재 작가의 어머니는 살아계신지, 어머니의 마지막을 작가는 어떻게 함께 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작가는 이후 어떻게 자신의 삶을 풀어나갔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이후 이야기가 좀더 듣고 싶어졌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의 세계로 우리를 빨아들인다.

더불어 나의 인연과 나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도 함께 안겨준다는 점에서 보기 드물게 진기한 책이라 여겨진다. 

 

*노트

 부적목이 산을 지킨다는 구절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잘 난 자식은 부모 곁을 지키지 않고 결국 부족한 자식이 부모 곁에 머물면서 부모를 돌보게 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