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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과 사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

Livcha 2021. 5. 17. 13:43

 

사실 대담집 읽기는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이 집안에 있어 그냥 버리기도 아쉽고 해서 읽기로 했다.
읽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롭다.
내셔널리즘, 옥시덴탈리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민족과 국민이란 개념이 품고 있는 폭력성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지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내셔널리즘에 저항하는 진정한 실천이 뭐란 말인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소위 지식인들의 한계가 이런 것이겠지...

자신들의 일상적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셔널리즘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 통제에 맞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들려주면 더 알찬 대담이 되었을 듯. 



노트>
사카이 나오키 서문: 식민주의적 죄의식을 넘어서>
1.만일 일본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식민주의의 은혜를 계승함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지켜내는 일이라면, 저는 일본인이기를 그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호소해야 한다(...)
2.위안부 문제에 '양심적으로' 관여해온 일본 자유주의자들의 언동에서도 식민주의적 죄의식을 통한 우월의식의 보존이라는 의도가 언뜻언뜻 보였습니다.
3.일본인 중에서 죄있는 사람과 죄없는 사람을 죄의 정도에 따라 처벌하는 것, 한국 국민 중에 피해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을 피해의 역사적 고유성에 따라 인지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지현서문: 세습적 희생자의식을 넘어서>
1.구체적이고 복합적인 개인을 추상적이고 단일한 범주로 단순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래서 '집합적 유죄' 개념에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개념을 복합적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는 사카이 선생의 딜레마에서 나는 그를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읽었다.
2.'세습적 희생자의식'은 식민지 세대가 겪은 고통을 담보로 한반도의 전후 세대가 손쉽게 면죄부를 획득하는 근거가 된다.
3.'세습적 희생자의식'을 축으로 만들어진 집단적 기억은 결국 한반도의 국가주의 또는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을 정당화하는 정서적 기제이다.
4.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역사적 가해 사실을 부정하면 할수록, 전후 일본이 식민주의적 세습적 가해자이며 그래서 모든 일본인은 '집합적 유죄'라는 심증은 더 굳어진다. 그 결과, 한반도 내셔널리즘의 '세습적 희생자의식'은 더욱더 정당화된다.
5.식민주의가 내게 주는 교훈은, 또 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부모 세대와 달리 우리도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장 식민지, 제국의 콤플렉스를 벗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1.사카이: 현재의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세우려면 어쩔 수 없이 과거의 폭력행위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요, 이것을 포스트콜로니얼리티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2.임: 국민국가적인 카테고리에서의 정체성 형성은 결국 차별과 배제를 전제로 하고, 이미 그 과정 자체가 차별과 배제에 근거한 체계적 억압, 다른 사람에 대한 억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3.사카이: 정체성은 반드시 한번은 자신이 아닌 타자를 매개로 하고, 그것을 거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4.임:타자를 매개로 이루어지지만 그와 같은 어떤 타자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그리고 억압으로 나아가는 배타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은, 인간 역사에서 하나의 상수처럼 변함없이 있어 왔던 현상이라기보다는 근대에 이르러 강화된, 혹은 근대에 이르러 나타난 특수한 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5.사카이:주권이 왕이나 황제에서 인민이라는 집합체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국민·민족·인종과 같은 기묘한 구성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포스트콜로니얼 문제로 다시 한번 돌아가봐야 할 것 같군요.
6.사카이:약 200년 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부터 여러 형태로 만들어져온 동일성이 그 속에 언제나 타자화 혹은 식민화의 폭력의 기억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그러한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 필요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동일성을 만들어온 과정을 신화화해서 긍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인민주권 역시 신화적인 기초를 필요로 합니다.
7.임:조지 모스(George L. Mosse)가 나치즘의 내면화 과정을 대중의 국민화라는 맥락에서 잘 추적하면서, 왜 인민주권론이 나치즘의 사상적 기초라는 주장을 했는지 그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투영된 '제국'의 흔적>
사카이: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단순히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혹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근대화라는 것은, 국민국가의 성립식민화와 이론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2장 민족, 국가폭력과 배제 그리고 포섭의 담론들
민족은 역사적·문화적 구축물이다>
1.임:저는 요즘 나치즘이나 파시즘, 혹은 스탈린주의 등을 '대중독재'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대중독재'가 갖는 뚜렷한 특징은 국민국가적 근대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잘 짜인 관료적 행정기구, 지방의 개별 촌락단위까지 침투한 동원의 메카니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장치 등을 통해, 대중의 일상적 사고와 생활에 관철되는 지배 헤게모니는 국민국가의 완성도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닐까요?
2.임:내셔널리즘다양한 욕망을 지닌 개개인을 단일한 집합의지를 가진 국민으로 추상화시키는 이론적 기제인 셈이지요. (...)사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은 국민의 집합의지를 내세운 권력이 대중들의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과정이라고도 하겠습니다.
3.임:추상적인 집단, 민족, 집합에 대한 의식은 대개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주입되고 침투된 이데올로기이며, 실제로 구체적인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다는 거죠. 집합적으로서의 어떤 집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조작된, 만들어진 하위의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20세기의 신화 민족주의>
한국과 일본의 염치 없는 내셔널리즘>
1.사카이:국민국가의 원칙이 명백히 가능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는 데도 국민국가의 고전적 환상이 홀로 걸어다니기 시작합니다.
2.사카이:미국의 점령이 종료되는 1952년 이후에는 한일행정협정을 근거로 미점령군이 주둔군이 되는데 자위대는 그 주둔군을 보좌하기 위한 군대지요. 그 군대는 일차적으로 인민 반란으로부터 주둔군의 인명이나 시설을 지키는 것을 임무로 하며, 그런 한에서 일본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군대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군사적 지배에 필요한 미군 시설이나 인재를 일본인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군대가 아닐까요? 그것은 자국민을 지키는 자위대가 아니라 타국민을 지키는 '타위대'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2.임:공산주의-야만-반민족, 소련제국주의-김일성-매국노라는 의미연쇄를 통해 반공주의가 내셔널리즘과 결합합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미국-서구문명-반공-독립이라는 등식과 짝을 이루지요. 이 등식은 반공규율사회의 틀로써 충성스러운 '국민'을 찍어내는 담론적 기제였지만, 동시에 반공주의와 내셔널리즘, 그리고 서구 문명과 내셔널리즘을 결합시킴으로써 미국 헤게모니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3.임:어떤 면에서는 미국 헤게모니의 존재가 한반도 변혁세력의 지평을 반미내셔널리즘에 가둬버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고도 하겠습니다.
4.임:미국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진보적 내셔널리즘이나, 미국 헤게모니에 기생하는 내셔널리즘이 가지고 있는 코드는 유사한 측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코드는 한 마디로 19세기적 의미의 부국강병입니다.
5.임:국민개병제, 징병제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가 불가능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미 국민국가의 헤게모니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겠지요.
6.임: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단색의 낭만주의적 민중신화에서 벗어나, 지배 헤게모니에 포섭되어 권력에 갈채를 보내는, 민주의 또 다른 존재방식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7.임: '시민종교'로 성장한 내셔널리즘이 국민으로 호명된 근대 주체들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근대 국민국가가 대중의 지지와 동의를 획득해나가는 이 역사적 과정을 '대중의 국민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사실상 영·미식의 '대중 민주주의'와 독일·이탈리아식의 '대중독재'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8.임:지배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의식을 식민화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스포츠나 광고 또는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와 정규학교교육, 또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서 '대중의 국민화'가 이루어져, 국민국가의 존재가 선험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한, 권력의 입장에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9.임:파시즘은 추상적 구조로서 존재한다기 보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화되고 재생산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에코(Umberto Eco)의 말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배후에서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집단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련의 문화적 타성들, 전통의 무게로 내면화된 무의식적 습관과 태도 등에 파시즘이 구석구석 침투해 있다는 것이지요.
10.임:우리는 그것(대중의 국민화)이 지닌 위험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근대를 완성시킨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라 근대를 해체한다는 문제의식이 오히려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3장 문명, 근대-내면화된 서양
오리엔탈리즘, 옥시덴탈리즘>
1.임:오키나와 음악은 일본의 본토 음악과는 완전히 다르며, 오히려 제주도 음악하고 놀랄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민족음악'의 범주로 묶는다는것은, 결국 다양하게 존재해왔던 음악을 국민 국가의 틀 속에, 민족 혹은 국민 속에 통합시켜버림으로써 그 음악에 내장된 다양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전유해버린다는 것이지요.
2.임:모든 '국어', 대개 표준어라는 것 자체가 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중간층이 쓰는 말이죠. (...)국어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이미 수도에 거주하는 유산계급 남성의 지배 헤게모니가 관철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단지 '모국어'라는 개념만으로 이야기할 때는 바로 국어의 성립 과정에 개입하는 헤게모니 문제를 무시해버리는 것이죠. 사실 '모국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국어'는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은 정치적 구성물입니다.

한국은 동양, 일본은 서양이라는 배치>
1.사카이:집단적 정체성은 자기 안에 있는 긍정적인 면, 적극적인 면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항상 다른 집단의 부정을 통해서 구성되는 편이 쉽습니다.
2.임: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교환하는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에는 큰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3.사카이:미국의 경우에는 오리엔탈리즘의 재흥이라는 식으로 국민 통합이 강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즉 비서양 사회를 멸시하는 태도를 긍정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불러냈다는 식으로 국민 통합이 진행됩니다. (..)이른바 백미주의가 국민 통합의 핵으로 등장합니다.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들>
1.임:동양과 서양을 어떤 고정된 실체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나 기본적으로 서양의 근대가 만들어낸 진보에 대한 욕망을 안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사카이:근대에 들어서면 지금 존재하는 현실만을 생각하는 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자기를 초극하려고 하는 가 하는, 자기를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하는 사회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의 전개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3.임:시간으로서의 근대, 또는 시대로서의 근대가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근대, 즉 끊임없이 자기를 증식하려는 그런 욕망을 가진 운동으로서의 근대에 대한 선생님의 지적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 그 지향점은 항상 만들어진 서양이 아니었나 합니다.
4.임:기원으로 생각하면 확실히 전세계 사람들은 서유럽에서 만들어진 개념을 사용해서 다양한 생활이나 사고를 영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 개편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곳에서는 서유럽에서 기원한 개념이나 제도, 기술이 없이는 일상생활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5.임:근대 역사학의 기원주의는 역사학이 국민 만들기의 첨병이었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기원에 집착해선 안 된다, 혹은 기원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사카이 선생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
6.사카이:이 서양이라는 헤게모니의 중요한 기능은 언제나 서양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과는 다른 곳에 주변부가 독자적으로 있으며 그 서양에 의해 주변부가 지배된다는 식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단순화시켜버린다는 점입니다.
7.임: 동양과 서양이 지리적 경계나 국민국가의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 이렇게 두루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대항담론의 형성에 일정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사카이:역사적으로 보면, 민족, 국민, 인종이라는 개념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서 점차 정착되어갑니다. 그것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균질적인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민족, 혹은 국민이 인종주의와 연결되어 이번에는 그 민족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철저하게 폭력적인 차별을 한다는 점입니다.

4장 젠더, 인종차별과 편견을 잉태한 제국의 오만
보편적 존재로서 남성, 타자화되는 여성>
1.임:상층으로부터 하층에 이르기까지 징병제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고 동원된 병사들에게 자발적 충성과 애국적 헌신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북치는 소년'의 전설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조국 프랑스와 나폴레옹 황제를 위해 벌벌 떨며 군대 행진곡을 치다가 알프스 산정에서 얼어 죽었다는 '북치는 소년'의 이야기나,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해방전쟁'에 동원된 독일 남성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영웅서사는, 군사화된 남성 영웅이 민족담론과 결합된 전형적인 민중/영웅적 서사 구조를 보여줍니다.
2.사카이: 메이지 시대 이전이 에도 시대(1600-1867)까지는 이서앵와 동성애가 동등하게 공적으로 이야기되거나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성애와 동성애, 양자에 대해 많은 저작이 씌어지고 17세기 이후 발흥한 인쇄기술과 출판산업 덕택에 이성애와 동성애에 관한 서적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3.임: 근대자본주의가 성립하면서 가부장제가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즉 가족노동으로부터 임노동으로의 노동 방식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근대적인 임노동 체계가 확립되면서 임금노동자로서 남자가 돈을 벌게 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형식의 성의 노동 분업이 핵가족 제도와 함께 자리잡게 됩니다.
4.사카이:지금까지 100여년 동안의 자본주의의 전개는 핵가족이라는 환상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는 말은 한 아이가 아버지 한 사람과 어머니 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고 그가 또 마찬가지로 형태로 새로이 한 사람의 아버지, 한 사람의 어머니로 구성되는 가족을 만든다는 의미인데, 이제 그런 가족 환상은 붕괴되고 있습니다.
5.임:핵가족, 근대적 가부장제, 국민국가 등, 이런 것들이 영구적이며 인간 본성에 잘 맞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현상이야말로 근대 국민국가의 지배담론 또는 지배 헤게모니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좋은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6.사카이: 세계적인 규모에서 인종이라는 사고방식이 광범위한 계층의 개인들에 의해 내면화되는 것은 아무래도 19세기 후반입니다.
7.임:오히려 다민족국가의 내셔널리즘일수록 굉장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국민 통합이 일민족국가보다 어렵기 때문에 국민을 만들기 위한 보조장치들이 훨씬 더 발달해 있기도 합니다.
8.사카이:국민국가는 국민의 평등을 내걸고 국민을 균질화시켜나가는데요, 국민의 차별화를 통해서 균질화를 지향한다는 역설적인 구조가 불가피했던 셈입니다.

식민지-제국에서의 남성과 여성>
1.사카이:억압당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그 민족이란 개념을 쓸 때, 그때는 그 민족 개념이 아주 유효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문맥을 벗어나도 과연 민족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건지, (...)
2.임:민족이라는 말이 호소력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력, 혹은 위협이 점차로 가시화되면서부터입니다. 그때 민족이라는 말이 제국에 의해 억압받는 자들의 연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같습니다.
3.사카이: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선택된 표상을 이제는 마이너리티측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혹은 차라리 마이너리티측이 그것을 장려하는 경향까지 나타난 겁니다.
4.임:조선의 한, 미학으로 승화된 조선의 한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조선 미술사를 처음으로 체계화한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것입니다.
5.사카이:현재 세계에서 민족문화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이 오리엔탈리즘화의 결과입니다. 나아가 마이너리티 측이나 비서양측이 서양이 강요하는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내고는 그것을 민족 전통이라는 식으로 세계 속에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임:역사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을 어떤 하나의 문화적 기억으로 만드는것이죠. (...)특히 내셔널 히스토리는 국가권력이 주도하여 만들어낸 기억입니다.
7.임: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국가에서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기억만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8.사카이:베네딕트 앤더슨이 원격지 내셔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고향이나 조국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 까닭에 오히려 더 강한 내셔널리즘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5장 오만과 편견-그 대항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세상의 관계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
1. 임:마이너리티가 제국의 주류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게토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 임:또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지역을 막론하고 외국인종에 대한 한국대학생들의 선호도를 조사해보니까 백인에 대한 선호고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의 의식 속에도 근대의 인종주의가 여전히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사카이:'이미지의 새로움이 곧 서양'이라고 할 때의 서양은 욕망의 상품화가 만들어낸 것인데, 이 서양은 지도상의 유럽이나 북미 지역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4.사카이:근대 이후에 다른 시대가 오는 게 아니라, 근대 속에서 근대 그 자체가 회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포스트 모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사카이:결국 문제는 유럽, 혹은 서양이 중심인 그런 시대가 아니라, 이미 전지구적인 규모로 확장된 근대에 대해서, 유럽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관련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나갈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양과 비서양이라는 차이를 전제하는 역사주의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6.임:민족과 국민은, 안으로 철저하게 하나의 통일되고 균질화된 집단으로 자신을 상정하고, 그 하나된 자신을 서로 다른 개체들에게 강제하거나 혹은 관철시키려는 그런 폭력적인 개념입니다.

전지구적 연대,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출발점>
1.임:남한 사회에 국한시켜 본다면, 레드 콤플렉스는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중요한 시민사회적 기반이자 강고한 진지였습니다.
2.사카이:한국이나 일본에서의 내셔널리즘은 이미 미국의 헤게모니 속에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3.임: 첫 출발은, 국민국가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틀 안에 사유와 실천을 가두어놓았던 과거의 대안 추구방식을 비판하고, 그것이 지닌 한계를 드러내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카이 나오키·임지현의 공동 후기
1. 주변부의 민족주의(국민주의)는 제국주의가 강요한 경계를 자발적으로 더 강화한다. 제국에 의해 '밖'이라고 규정된 자신의 존재를 '안'이라고 재규정함으로써 자신을 자키려는 절박한 시도를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변부의 민족주의가 궁극적으로 제국이 강요한 경계짓기의 논리에 조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전후 일본의 시민사회론이나 남한의 조국 근대화론, 북한의 강성대국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부강한 국민국가를 표상하는 상징으로서의 미국인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를 억압하기보다는 고무하고 격려한다.
3.미국의 헤게모니가 단순히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만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평범한 한국인·일본인의 일상적 삶 속에 미시정치의 방식으로 침투해 있다.
4.반미민족주의는 오히려 동아시아 인민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박은 미국 헤게모니를 부인하고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5.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진정한 비판이 한/일 양국 민족주의(국민주의) 비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