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114

[빛이 사라지기 전에] 바닷물 위 빛의 향유

올 여름 [오후의 소묘]가 펴낸 책은 빛과 물이 넘치는 작품이다. 말은 거의 없다. 우리는 그냥 작가가 그린 빛과 물을 눈으로 따라가며 느끼면 충분하다. 처음에 이 그림책을 펼쳐보았을 때는 난 글이 없는 그림책인 줄 알았다. 두 번째 펼쳤을 때 비로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적 향유, 그것을 의도했다면 성공한 셈이다. 책을 드는 순간, 표지의 홀로그램이 만드는 빛이 일렁인다. 아이디어가 좋다. 작가는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빛과 물에 시각적으로 빠져드는 관찰자. 우리도 작가가 전해주는 시각적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올 여름 바다에도 가지 못하는 내게 이 그림책은 큰 선물이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빛나는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책은..

그림책 2021.07.27

[허락없는 외출] 녹색 가득한 그림책

봉투를 뜯어서 책을 꺼내는 순간 녹색으로 눈부시다. '허락없는 외출'이라... 그림책을 펼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는데 글이 없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비로소 글이 나온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그냥 느끼라 하는 것 같다. 한밤중에서 새벽까지의 외출. 짙은 녹색에서 옅은 녹색으로 그리고 마침내 노란빛으로 끝이 난다. 하얀 옷을 입은 아이는 밤새도록 숲을 거닌다. 아름다운 꿈 같다. 지난 밤 나는 바위산을 헤매는 꿈을 꿨다. 가파란 바위에서 바위로 이동하는 일이 쉽지 않아 불안하고 두려운 꿈. 그런데 그림책 속 아이는 녹음이 울창한 숲을 헤맨다. 이 아이도 불안했던 것 같다. 한밤중 숲의 생명체들 속에서 다니는 일이 자유롭고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헤매다가 아침햇살이 비치니까 숲의 방황..

그림책 2021.06.25

[인생은 지금] 인생에 대해 사색하도록 하는 그림책

'오후의 소묘'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그림책들은 따뜻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고 무엇보다 그림책 독서의 대상을 성인으로 잡고 있다는 것이 다른 그림책 출판사와 차이점이다. 이번 [인생은 지금]은 은퇴한 부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싶지만 할머니는 자꾸 뒤로 미루려고 한다. 할머니에게는 지금 해야 할 요리가 있고 청소가 있고 설거지거리가 있다.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인생을 즐기러 떠나고 싶지만 할머니는 지금 당장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림책의 마지막에서 할머니도 할아버지에 동의해 길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인생이 지금 이순간이라는 지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박해진다. 언제 죽음이 나를 끌고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

그림책 2021.06.23

[꽃들의 말] 꽃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우화

출판사 '오후의 소묘'가 이번에 출간한 책은 [꽃들의 말(2021)]. 꽃들이 말을 한다는 걸까? 원제는 'Les fleurs parlent'였다. 꽃들이 말을 한다는 거네... 꽃들이 무슨 말을 한다는 걸까? 읽고 보니까, 꽃들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자줏빛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니, 자줏빛 꽃, 즉 보라색 튤립을 소재로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나이든 원예가가 자신이 품종개량한 보라빛 튤립에 대한 애착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다가 결국 그 꽃을 손에서 놓음으로써 평화를 얻는다는 이야기.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 집착이 자신은 삶을 힘들게 하기에 집착을 버려야 삶이 편안해진다는 지혜를 담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하얀 꽃이 들려주..

그림책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