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 21

[인생이 내게 준 선물] 말기암 환자의 죽기 전 90일간의 기록

우연히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는데, 이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마음이 아프다' 였다. 53세라는 상대적으로 이른 죽음을 맞게 된 남자의 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죽음을 직면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행한 일들이 그가 살아온 것과 꼭 닮아서였다. 회계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유진 오켈리는 자신이 악성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죽기 석 달 전에 알게 된다. 살 날이 불과 석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특별히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다른 암환자와 달리 죽기 직전까지도 신체적으로 크게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죽기 전까지 현재에 집중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도 한다. 자연의 변화에 감탄하고 ..

늙음과 죽음 2021.08.13

다이애너 애실 [어떻게 늙을까], 80대여성이 들려주는 나이듦

1. 89세의 여성작가 Diana Athill가 쓴 이 책은 이미 89세인 사람이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평균수명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유혹이 되는 것. 그런데 왜 제목을 '어떻게 늙을까'로 붙였을까? 사실 이 책의 원제는 somewhere towards the end인데... 번역서 제목에 낚인 채 기대한 내용을 찾지 못해서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저자는 노년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긴 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어떻게 늙을까'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늙고 있다'가 적당해 보인다. 2. 표지의 그림은 아마도 고사리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이 책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나무고사리, 키가 20미터까지 자란다는 그 나무, 저..

늙음과 죽음 2021.08.10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

아흔일곱의 나이에도 자립적으로 삶을 꾸려내는 할머니, 이옥남,이미 그 자체만 해도 경이롭다. 긴 세월을 노동하며 정직하게 살고, 그리고 누구나 꿈꾸는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삶의 질을 유지하고 최대한 자립적인 일상을 꾸리는 이옥남 할머니.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귀한 책이다 싶다. 90대의 글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그만큼 삶을 살아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고, 또 90대 여성의 글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오늘날 90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가운데 자신의 삶, 감정을 글로 표현한 여성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옥남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글자를 읽고 써고 싶어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열 일곱의 나이에 결혼을 해서는 어린 시절 어깨 너머로 깨친 한글을 ..

늙음과 죽음 2021.08.09

[숨결이 바람 될 때] 삼십 대 젊은 의사의 마지막 노래

36세에 폐암 말기 진단을 말고 38세에 사망하기까지 젊은 레지던트 의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죽기 전에 글로 남겼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를 읽고 솔직히 실망했다. 하지만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말라'를 읽고 1부조차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왜 1부를 써야 했는지... 이 책은 어린 딸 케이티에서 바쳐졌는데 아마도 그 모든 이야기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1부, 즉 그의 어린 시절부터 폐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지 없이 자라게 될 딸에게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쓴 것이 분명하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2부.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이야기. 생명체로서 죽기 전까지 삶에 최선을 ..

늙음과 죽음 2021.08.02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완화의료와 죽어간다는 것

영국 호스피스 의사 캐스린 매닉스(Kathryn Mannix)의 책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사계절, 2020)]은 '완화의학이 지켜주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원제는 'With the end in mind'로 2017년에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완화의학 분야에서 40여년간 활동한 의사의 생생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완화의료가 죽기 직전까지 죽어가는 사람의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어떤 도움을 주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과정이 결코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는다면 생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럼에도 영국의 완화의료 상황과 우리나라의 것이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에 책 속의 ..

늙음과 죽음 2021.07.25

김열규의 마지막 책 [아흔 즈음에] 80대 노인의 사색

오래 전 김열규의 책 [노년의 즐거움(비아북, 2009)]을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책 [아흔즈음에(humanist, 2014]도 읽게 되었다. 1. 그런데 책을 펼치면서 내 눈에 자꾸 박히는 표현, 동일 단어 반복하기 쌓이고 쌓였다, 굵고도 또 굵다, 싱그럽고도 또 싱그럽다, 바라고 또 바란다, 뻐기고 또 뻐겨도, 푸르고 또 푸르다, 드물고 또 드문, 깊고 또 깊어서, 바래고 바랜, 덮치고 또 덮쳐 등등 처음에는 이 표현 때문에 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서 곧 글에 집중해 끝까지 무사히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글 잘 쓰는 작가는 자기 글에 대한 고집이 있으니까, 편집부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또 김열규같은 작가의 글에는 더더..

늙음과 죽음 2021.07.25

사노요코의 마지막 에세이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다. 그녀는 2010년에 사망했다. 뒤늦게 그녀의 죽음을 알고 무척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더는 그녀의 멋진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1.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사노요코의 마지막 에세이집이다. 부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책이 재미있으니까 용서하자. 2. "여러분, 한류 열풍의 정체를 아시겠지요. 한류열풍은 허구의 화사함에 의해 일어났다. 나도 빠져들었다. 아아, 즐거운 1년이었다. 1년 내내 왼쪽을 보고 침대에 드러누워 욘사마와 이병헌, 류시원에게 화사한 마음을 맡겼더니 1년이 지나자 턱이 돌아갔다. 의사에게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 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순간 납득이 갔다. 초코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 보기만 해도 토할 지경..

늙음과 죽음 2021.07.23

[어느날 나는 그만 벌기로 결심했다] 이 시대의 노후 대책 한 사례

1. 22년간 기자생활을 해서 번 돈으로 오피스텔 두 채을 마련하고 전원주택 지어서 돈벌이를 하지 않고 오피스텔에서 생기는 임대소득으로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이야기를 쓴 책이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일단 전직기자인 김영권은 기자로 돈벌이를 하지 않고 임대소득으로 먹고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임대소득은 120만원이다. 이 돈으로 여동생과 전원주택에서 살면서 바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63세가 되면 오피스텔 한 채 팔아서 아들 결혼자금에 보태주고 그때부터는 그 부족한 부분을 84만원 연금으로 채우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채는 70살에 팔아서 그때부터는 연금만으로 100세까지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영권은 이런 삶을 자발적 가난이라 이름 붙였다. 글쎄, 자발적 가난은 아닌..

늙음과 죽음 2021.07.23

헨리 마시 [참 괜찮은 죽음] 신경외과의사의 솔직한 경험담

이 책은 영국 신경외과의사인 헨리 마시(1950년생)의 에세이집이다. 무엇보다 '참 괜찮은 죽음'은 적당한 제목이 아니다. 원제인 Do no harm이 적당하다. 해를 입히지 말라.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신경외과의사의 경험담을 흥미롭게 풀어놓은 책이다. 사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기에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책이지만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재미난 책이다. 저자의 솔직함, 의사로서의 진지한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 하나. 수술, 특히 뇌수술을 받기로 했다면 죽을 각오, 적어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여러 이유에서 수술이 잘못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사의 기분이 ..

늙음과 죽음 2021.07.21

[휴게소]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맞는 이별

이 그림책은 마치 만화책같다. 반려동물들,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햄스터... 이 동물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 살아 생전 삶을 돌아보는 동물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가는 동물들. 반려동물들에 대한 죽음의 상상도 사람들이 맞는 죽음의 상상과 다르지 않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기 전 들르는 공간을 휴게소라 이름을 붙였다.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의미겠지. 이승에서 저승을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템포 쉬면서 살았던 삶을 되돌아보고 반려동물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사랑, 감사, 이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한 편지도 쓰고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안내자도 만나고 요단강까지 안내를 받고... 마치 반려동물의 49제동안의 시간의 이야기같다. 슬프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맞을 수밖에 ..

늙음과 죽음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