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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말] 꽃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우화

출판사 '오후의 소묘'가 이번에 출간한 책은 [꽃들의 말(2021)]. 꽃들이 말을 한다는 걸까? 원제는 'Les fleurs parlent'였다. 꽃들이 말을 한다는 거네... 꽃들이 무슨 말을 한다는 걸까? 읽고 보니까, 꽃들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자줏빛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니, 자줏빛 꽃, 즉 보라색 튤립을 소재로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나이든 원예가가 자신이 품종개량한 보라빛 튤립에 대한 애착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다가 결국 그 꽃을 손에서 놓음으로써 평화를 얻는다는 이야기.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 집착이 자신은 삶을 힘들게 하기에 집착을 버려야 삶이 편안해진다는 지혜를 담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하얀 꽃이 들려주..

그림책 2021.06.23

김혜련 [고귀한 일상] 사소한 일상이 고귀하길 바라는 마음

김혜련 작가의 글을 무척 기다려왔다. 그래서 [고귀한 일상]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지난 번보다는 책표지도 산뜻하고 책의 두께도 얇아서 독자들이 쉬이 손을 내밀 것 같다. 1. 그런데 '고귀한 일상'이라는 제목이 좀 튄다 싶었다. '고귀한 일상'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상이 고귀할까? 그 답은 바로 프롤로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맹물맛' 같은 평범한 세계에서 신성성과 위대함을 구한다. 고귀한 일상을 살고 싶다. 삶의 근원이 되어 주는 것에 정성을 기울이고 '사소한 고귀함'으로 회생하자고 모은 손을 내밀고 싶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으로는 만족하기 힘든가 보다. '신성함', '위대함', '근원'이라는 추상적이고 ..

김혜련 [밥하는 시간] 몸과마음의 치유기

김혜련 작가의 [밥하는 시간]은 페미니스트 저널인 [일다]에서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라는 칼럼으로 2016년1월부터 2017년10월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묶은 책이다. 연재될 당시도 꽤나 열심히 읽었던 글들이었는데, 책으로 출판되기를 무척 기다렸었다. 그런데 올해 비로소 이 책이 출간되었다.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지! 책을 받아들었을 때, 녹색과 붉은 색이 강렬하게 와 닿은 책 표지에 좀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 속의 저자의 강렬한 경험에 대한 고백을 떠올린다면 이 표지가 꼭 적절하지 않다고 볼 것까지 아니다 싶다. 그냥 순전히 내 개인적인 불만이라고나 할까. 책은 '밥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괜찮은 제목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 속에서 '4장 밥하는 시간'이 ..

[마녀사냥] 잔인해서 소름끼치는 역사적 사건

르네상스 때 절정에 이른 마녀사냥. 마녀사냥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저자는 부패한 카톨릭이 이단심문제를 도입하고 마녀사냥을 통합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분석한다. 물론 마녀사냥은 로마 카톨릭이 주도했지만 종교개혁후 개신교도 마녀사냥에 동참한다. 당시 잘난 지식인들도 모두 가세했다는 것이 믿기가 어렵다. 성직자, 재판관, 정부관리, 지식인이 합세해서 새로운 마녀의 개념과 이론을 내놓고 거기다 맞춰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목숨을 빼앗았다니,... 종교적 믿음이 얼마나 잔혹하게 인명을 앗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줌. 파스칼의 지적은 참으로 옳다. 21세기에도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혹한 일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인류의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언제쯤 끝이 ..

소수자감성 2021.06.03

강제윤 [자발적 가난의 행복] 가난하려고 애쓰라는 시인의 충고

1.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온 것은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에 "부자가 되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소제목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부자 되세요'를 덕담으로 나누는 시대에 부자 되는 것이 죄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글이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2. 강제윤은 88년에 시인으로 등단해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옥살이도 하고 고향 보길도에서 8년간 지내면서 댐건설 반대해서 단식도 하고 2005년도에 별안간 유랑길에 올라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단다. 우리나라 사람 사는 섬 500여개를 순례하면서 지낸다고. 3. 나는 이 책의 1부 보길도 시절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글솜씨가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제 일요일 내내 읽었다. 4. 그가 쓴 시 ‘아무것도 남기지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 일상생활의 구조(상)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아날학파(L'Ecole des Annales)는 루시앙 페브르(Lucien Febvre, 1878-1956)와 마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에 의해 1920년대말에 시작된 프랑스 역사학의 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역사를 총괄적이고 전체주의적 시선에서 포착하며 사회현상들을 장기적으로 다룬다. 페르낭 브로델은 아날학파 2세대로 분류된다. 그는 단기적 사건보다 장기적인 사회변화, 특히 경제사에 관심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날학파 학자로는 조르쥬 뒤비, 필립 아리에스가 있다.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는 1995년 까치출판사에서..

조루주 뒤비 [12세기의 여인들] 3권

조루주 뒤비는 12세기의 프랑스 여성들의 '불확실하고 일그러진 반영'을 그려보인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12세의 기독교 문명 아래 유럽에서 살아간 여성들은 남성들이 규정한 '욕망과 죄의 존재'로서 억압당하고 통제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2세기에는 여성의 지위가 약간은 상승했다고, 또 어쩌면 행복했을 수도 있다고 조르주 뒤비는 정리한다. 21세기와는 무려 900년의 간격의 있는 기독교 사회 속의 여성의 삶을 살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삶이다. 조루주 뒤비가 당시 성직자들이 남긴 글들 속에서 해석해낸 여성들의 삶은 가히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노트> 여성들의 죄악> 사제 에티엔 드 푸제르에게 여성은 "여성이란 죄악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인식. 여성들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자기 욕망에 충실한 흥미로운 삶

무루(박서영)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코로나19에 지쳐 꺼져가는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 짚혀준다. 책 표지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고 쓰여 있어 그림책과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나?하는 선입견으로 한동안 책꽂이에 책을 꽂아두고 펼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개인적으로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고 즐기고 집에도 아끼는 그림책은 서가에 꽂아두고 좋아하지만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림책이든 어떤 책이든 내 마음대로 선입견 없이 읽고 싶고 누가 어떻게 읽는 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책에 누군가 서평을 써둔 부분은 대개 건너뛴다. 특히 책의 도입부에 서평이 들어 있는 책 편집을 싫어한다..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일상생활의 구조(하)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인 '제 8장 도시'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도시와 시골의 분업, 시장과 도시의 긴밀한 관계, 대도시와 근대국가와의 관계, 도시내의 계층분화에 대한 서술은 흥미로왔다. 발췌> 제5장 기술의 전파:에너지원과 야금술 "모든 것이 기술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드센 노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고 단조로운 노력도 포함된다. (...) 결국 기술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노동을 적용하는 활동, 태초부터 영구히 계속되어온 트레이닝을 의미한다." "우선 발명이 이루어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사회가 필요한 정도의 수용성을 갖추었을 때 적용이 이루어진다." "기술이란 어찌 보면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휴게소]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맞는 이별

이 그림책은 마치 만화책같다. 반려동물들,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햄스터... 이 동물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 살아 생전 삶을 돌아보는 동물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가는 동물들. 반려동물들에 대한 죽음의 상상도 사람들이 맞는 죽음의 상상과 다르지 않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기 전 들르는 공간을 휴게소라 이름을 붙였다.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의미겠지. 이승에서 저승을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템포 쉬면서 살았던 삶을 되돌아보고 반려동물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사랑, 감사, 이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한 편지도 쓰고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안내자도 만나고 요단강까지 안내를 받고... 마치 반려동물의 49제동안의 시간의 이야기같다. 슬프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맞을 수밖에 ..

늙음과 죽음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