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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피었으므로, 진다] 산사 기행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

이산하 시인의 [악의 평범성]을 읽고 그의 에세이집도 읽어보기로 했다. [적멸보궁 가는 길]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하필 그 책을 유일하게 구비한 동네 도서관이 문을 닫았기에 다른 도서관에서 [피었으므로, 진다]를 빌려왔다. 작가는 앞서 소개한 바 있지만,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당했고 그 일은 작가에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그의 시도 그렇지만 그의 에세이도 허무주의와 우울이 짙게 깔려 있다. 최근 그의 근황에 의하면 대장암 투병중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설사 작가가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난 한 개인이 할 바는 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라산'이란 그의 시가 우리 역사에 남긴 족적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싶다. ..

기타 2023.02.19

이산하 [악의 평범성] 허무와 우울 가득한 시

이산하 시인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1987년 3월 [녹두비평]을 발표했다가 1년 6개월 옥살이를 한다. 이후 시인은 10년동안 절필했다고 한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던 시기에 진실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했던 것이다. [악의 평범성]은 시인이 창작과비평사에 2021년에 발표한 시집이다. 한 때 필화사건을 겪은 시인이기도 했고 이제 60대에 들어선 시인이 어떤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떠올리게 한 책 제목인 '악의 평범성'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시집 안 시인의 사진이 그의 삶의 골곡을 느끼게 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힘들었구나, 싶었다. 시는 지극히 허무의 냄새를 풍겼다. 생과사의 갈림길에 머물러 ..

2023.02.07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하니까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자 해서 지금껏 읽은 것들을 떠올려 보면,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1985)], [노르웨이의 숲(1987)], [댄스댄스댄스(1988)], [TV피플(1990)], [스푸트니크의 연인(1999)], [해변의 카프카(2002)], [카트 멘쉬크(2004)], [잠(2012)]이 모두다. 그리고 이번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사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동생 때문인데, 동생의 책꽂이에 그의 책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책을 빌려서 읽은 것은 [TV피플]까지다. 그런데 난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의 문체가 깔끔하고 세련되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감동..

소설 2023.01.10

미야베 미유키 [인내상자] '비밀'을 소재로 한 단편집

[북스피어]에서 2022년 여름에 번역출간한, 미야베 미유키 단편집 [인내 상자]는 일본에서는 1996년에 출간된 것이다. 즉 미야베 미유키가 30대 중반일 때 출간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지금도 왕성하게 소설을 내놓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작가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글을 쓰는구나,하고. 이번 [인내 상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글 한 편의 분량이 적다. 책은 제목을 [인내 상자]로 선택했고 그 글을 제일 앞에 실었다. 그래서 무척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이게 뭐야?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뒤에 실린 편집자 후기에서 편집자도 '인내의 상자'..

상상력 2023.01.02

[롱롱의 새해맞이] 중국의 새해이야기

이제 동네 도서관이 재건축을 위해 휴관에 들어갔다. 그래서 당분간 교환도서코너를 이용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쉽다. [롱롱의 새해맞이]는 교환도서코너에서 마지막으로 교환해온 그림책이다. 그림을 보고서는 중국 그림책인가? 했지만 글을 쓴 사람이 캐서린 가워(Catherine Gower)라는 이름을 보건대 중국사람은 아닌 듯한데… 이 그림책은 2005년에 영국에서 출판된 것이라고 한다. 책의 원제를 보면 ‘Long Long’s New year(롱롱의 새해)’다. 소제목이 중국의 새해 이야기였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 하지홍이 중국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전통중국화를 전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림이 중국적으로 여겨졌었나 보다. 그림이 멋지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롱롱은 할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가족이다...

그림책 2022.12.31

토미 드 파올라 [녹매니 언덕의 거인] 아일랜드 거인 이야기

거인 이야기, 거인 축제 등 거인문화와 관련한 것들을 서유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그림책 [녹매니 언덕의 거인]은 아일랜드 옛 이야기 속 거인 이야기다. 한국차일드 아카데미에서 2002년에 '명화로 보는 클래식 명작동화' 시리즈로 번역출간했다. 이 그림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바로 그림작가 토미 드 파올라의 그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미 드 파올라(Tomie de Paola, 1934-2020)는 미국 아동도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가 출간한 아동도서가 무려 260권이 넘는다고 하니, 가히 놀랄 만하다. 2011년 미국 아동문학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작가에게 주는 상 '아동문학유산상(Children's literature legacy Award)'를 받았다고 한다. 이 상은 미국 도..

그림책 2022.12.29

[고양이 피루호] 시골쥐가 도시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악당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 피루호]는 페르난도 랄라나가 쓰고 비올레타 몬레알이 그림을 그렸다. 1999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 한솔교육에서 2003년에 번역출간했다. 페르난도 랄라나(Fernando Lalana, 1958-)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으로 진로를 바꾼 스페인 작가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쓴다. 비올레타 몬레알(Violeta Monreal, 1963-)는 화가인데, 어린이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도시에 사는 나쁜 고양이 피루호에 관한 것이다. 이솝의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하는 것이 재미있다. 잠깐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를 살펴보면, 도시쥐의 초대를 받아 도시에 간 시골쥐가 도시에는 맛있는 것은 많아도 위험하다면서 시골로 되돌아간..

그림책 2022.12.28

[부드러워요 딱딱해요] 산타클로스, 루돌프와 함께 하는 과학공부

올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3일째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책을 보는 순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서 집어들었다. 산타와 루돌프 그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김숙경이 그리고 황근기가 썼다. 그러데 알고 보니 이 그림책은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체의 재질과 성격'에 대해서 공부하는, 한국헤밍웨이가 2007년에 출간한 '쇠똥구리 과학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과학그림책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구성되었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산타할아버지의 안경이 선물보따리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손을 넣어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보려하지만 매번 다른 물건이 손에 잡힌다. 연필, 지우개, 공, 책, 모래, 곰인형... 손으로 만졌을 때 물체의 감촉에 대한 느낌은 물체에 따라 다르다. 매끈..

그림책 2022.12.28

레오 리오니 [내 거야!] 이기적인 '나'에서 서로 돕는 '우리'로

[내 거야!]는 레오 리오니 그림책으로 다섯 번째 소개하는 책이다. [티코의 황금날개(1964)] [프레드릭(1967)] [새앙쥐와 태엽쥐(1969)] [물고기는 역시 물고기야(1970)]을 앞서 소개했다. [프레드릭]은 시공주니어에서, [물고기는 역시 물고기야]는 프뢰벨에서 번역출간했다. [내 거야!]를 포함한 나머지 책은 모두 마루벌에서 번역출간되었다. [물고기는 역시 물고기야]는 시중에서 낱권으로 구입할 수 없지만 나머지는 모두 구입이 가능하다. [내 거야1]는 1986년에 출간된 책이다. 레오 리오니(Leo Lionni, 1910-1999)가 70대에 출판한 그림책이다. 50대에 출간한 그림책들에 비해 그림이 단순하고 더 매혹적이다 싶다. 물론 여전히 그다운 깔끔한 그림체는 여전하다. 레오 리오니..

[내이름은 큰웅덩이검은하늘긴그림자] 외로운 존재들의 만남

푸른 빛의 그림 분위기 때문에 이 그림책을 교환해왔다. 그림책 제목 '내 이름은 '큰웅덩이검은하늘긴그림자''은 마치 인디언이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새와 아이의 모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오나시'를 떠올리게 하는 낯선 존재. 아무튼 표지 그림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신기한 것은 이 그림책은 한국작가의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적인 그림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한국 그림책이라... 김미애가 쓰고 김삼현이 그렸다고 되어 있다. 이름이 없는 외로운 아이가 달빛그림자 마을에서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는 이름 '큰웅덩이검은하늘긴그림자'라는 이름을 가진 괴물을 만난다. 아이는 괴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 괴물은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자신이 심장이 되어준다. '큰웅덩이검은하늘긴그림자'가 ..